혜월이 쌀도둑 지게 밀어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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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일에 보는 스님들의 삶과 일화
선사ㆍ비구니 수행담 다룬 책 눈길
도둑은 공양간에 몰래 들어가 쌀가마를 들어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 했지만 너무 무거워 쩔쩔맸다.
그런데 꼼짝도 않던 지게가 어느 순간 번쩍 들렸다.
누군가 밀어주지 않고선 이럴 수가 없었다.
도둑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한 스님이 손을 입에 가져갔다.
"쉿! 들킬라.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가게.먹을 것이 떨어지면 또 오게나."
이날 밤 도둑의 지게를 밀어준 사람은 혜월 선사(1862~1937년)였다.
그가 충남 예산의 덕숭산 정혜사에서 보여준 '천진불'의 한 장면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배고픈 대중을 먹여살리기 위해 산비탈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었기 때문에 '개간 선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스승인 경허 선사(1846~1912년)는 어땠는가.
경허는 고목에서 꽃을 피우듯 선풍을 되살려낸 큰스님.어느날 어린 만공이 "바랑이 무거워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대자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에게 다가가 입을 쪽 맞춰버렸다.
여인은 소리를 지르고 동네사람들이 낫과 괭을 들고 쫓아왔다.
둘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10리나 달렸을까.
경허가 말했다.
"지금도 바랑이 무거우냐?" 경허는 나중에 승복을 벗고 머리를 기른 채 이름까지 바꿔 함경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입적했다.
이들뿐인가.
깨달은 뒤에도 불목하니나 나무꾼으로 살다 간도까지 가서 유랑하는 난민에게 주먹밥을 주고 짚신을 삼아줬던 수월,대찰의 조실이면서도 머슴처럼 살았던 벽초,누구도 해내지 못한 무문관 수행 6년을 마치고도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끊은 채 중생 속으로 들어가 버린 제선….고봉 스님은 기생집에서 술을 마시고 밤을 새우면서도 삼매에 들었고,보문은 마취 없이 갈빗대를 세 대나 도려내는 데도 일체의 망상 없이 고요했다.
출가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이를 위해 수행할 땐 선방과 토굴,무문관도 마다하지 않지만 깨닫고 난 다음에는 중생과 어우러져 그것을 나눈다.
그것이 곧 화광동진(和光同塵·깨달은 이가 그 빛을 감추고 중생 속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요,동체대비(同體大悲·중생과 한 몸이 되어 보살핌)다.
그래서 수행자들의 삶은 세인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이처럼 자신의 빛을 감춘 채 중생 속에 숨어들어 함께 호흡한 근·현대 선사 33인의 이야기가 '은둔'(조연현 지음,오래된미래)이라는 책으로 엮여져 나왔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사와 선방에서 수행하는 과정보다 중생 속으로 들어가 어우러지는 '만행'을 수행의 궁극으로 삼은 이들의 얘기다.
비구니 스님들은 어떨까.
경학과 울력이 조화로운 비구니 강원인 김천 청암사의 상덕 스님은 청암사 후원 살림 이야기를 통해 '죽 끓일 때에는 죽 끓이는 일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이치를 일깨운다.
또 250여명의 학인 스님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청도 운문사 혜은 스님은 철따라 변하는 초목의 모습에서 무상의 이치를 가르쳐준다.
이들 비구니 9명의 수행담은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김영옥 지음,오래된미래)에 담겨있다.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은 생활 명상집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은행나무)를 통해 한 생각을 멈춘 곳에 지혜와 행복이 있음을 설파한다.
그는 대중적이고 쉬운 생활법문을 통해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고(苦)'가 생겨난다며 분열에서 벗어나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선사ㆍ비구니 수행담 다룬 책 눈길
도둑은 공양간에 몰래 들어가 쌀가마를 들어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 했지만 너무 무거워 쩔쩔맸다.
그런데 꼼짝도 않던 지게가 어느 순간 번쩍 들렸다.
누군가 밀어주지 않고선 이럴 수가 없었다.
도둑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한 스님이 손을 입에 가져갔다.
"쉿! 들킬라.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가게.먹을 것이 떨어지면 또 오게나."
이날 밤 도둑의 지게를 밀어준 사람은 혜월 선사(1862~1937년)였다.
그가 충남 예산의 덕숭산 정혜사에서 보여준 '천진불'의 한 장면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배고픈 대중을 먹여살리기 위해 산비탈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었기 때문에 '개간 선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스승인 경허 선사(1846~1912년)는 어땠는가.
경허는 고목에서 꽃을 피우듯 선풍을 되살려낸 큰스님.어느날 어린 만공이 "바랑이 무거워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대자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에게 다가가 입을 쪽 맞춰버렸다.
여인은 소리를 지르고 동네사람들이 낫과 괭을 들고 쫓아왔다.
둘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10리나 달렸을까.
경허가 말했다.
"지금도 바랑이 무거우냐?" 경허는 나중에 승복을 벗고 머리를 기른 채 이름까지 바꿔 함경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입적했다.
이들뿐인가.
깨달은 뒤에도 불목하니나 나무꾼으로 살다 간도까지 가서 유랑하는 난민에게 주먹밥을 주고 짚신을 삼아줬던 수월,대찰의 조실이면서도 머슴처럼 살았던 벽초,누구도 해내지 못한 무문관 수행 6년을 마치고도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끊은 채 중생 속으로 들어가 버린 제선….고봉 스님은 기생집에서 술을 마시고 밤을 새우면서도 삼매에 들었고,보문은 마취 없이 갈빗대를 세 대나 도려내는 데도 일체의 망상 없이 고요했다.
출가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이를 위해 수행할 땐 선방과 토굴,무문관도 마다하지 않지만 깨닫고 난 다음에는 중생과 어우러져 그것을 나눈다.
그것이 곧 화광동진(和光同塵·깨달은 이가 그 빛을 감추고 중생 속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요,동체대비(同體大悲·중생과 한 몸이 되어 보살핌)다.
그래서 수행자들의 삶은 세인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이처럼 자신의 빛을 감춘 채 중생 속에 숨어들어 함께 호흡한 근·현대 선사 33인의 이야기가 '은둔'(조연현 지음,오래된미래)이라는 책으로 엮여져 나왔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사와 선방에서 수행하는 과정보다 중생 속으로 들어가 어우러지는 '만행'을 수행의 궁극으로 삼은 이들의 얘기다.
비구니 스님들은 어떨까.
경학과 울력이 조화로운 비구니 강원인 김천 청암사의 상덕 스님은 청암사 후원 살림 이야기를 통해 '죽 끓일 때에는 죽 끓이는 일에만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이치를 일깨운다.
또 250여명의 학인 스님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청도 운문사 혜은 스님은 철따라 변하는 초목의 모습에서 무상의 이치를 가르쳐준다.
이들 비구니 9명의 수행담은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김영옥 지음,오래된미래)에 담겨있다.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은 생활 명상집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은행나무)를 통해 한 생각을 멈춘 곳에 지혜와 행복이 있음을 설파한다.
그는 대중적이고 쉬운 생활법문을 통해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고(苦)'가 생겨난다며 분열에서 벗어나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