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정장 차림의 30,40대 남녀 샐러리맨들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열심히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있었다.
토론 주제는 자연스럽게 '어버이날'로 모아졌다.
'어버이날'이 무슨 날이냐고 뉴욕 출신의 제프 코탠칙(Jeff Kotanchick)이 묻자 한국인 학생들은 차례로 나서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영어로 열심히 설명했다.
이날 수업은 토스트마스터즈(Toastmasters) 코리아의 LG지부 소속 회원들의 월 정기 모임.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LG그룹 소속 회사원으로 서울 본사에서 퇴근한 뒤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가량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토스트마스터즈는 그룹 토론을 통해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국제 조직이다.
192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탄생했으며 세계 5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회원은 2만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는 1992년 도입됐으며 현재 11개 클럽이 활동 중이다.
토스트마스터즈는 조직 구성 이나 운영 모두 무보수 자원 봉사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토스트마스터즈 LG'는 토스트마스터의 취지에 공감한 LG그룹 소속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단체다.
회원은 30여명 정도로 매주 한 차례 서울 LG 트윈타워에 모여 토론회를 갖고 있으며, 매달 1회는 인화원에서 외국인 영어 선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 모임을 열고 있다.
토스트마스터즈 LG가 영어 회화를 중시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영어는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모임의 간사역을 맡고 있는 김상학 LG경영개발원 과장은 "기업 경영 활동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원들이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려면 영어는 필수여서 매주 토론회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인화원 소속 원어민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화원 소속 10여명의 네이티브 스피커들은 '토스트마스터즈 LG' 회원들의 취지에 공감해 회원으로 참여해 무보수로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외국인 대표 역은 캐나다 출신의 조안 홀든(Jo-Ann Holden)이 맡고 있다.
홀든은 인화원에서 열리는 확대 모임은 물론 서울 LG트윈타워에서 매주 진행되는 주례회에도 직접 참여해 회원들의 영어 공부를 돕고 있다.
올해로 한국 생활 4년차를 맞은 홀든은 원래 캐나다에서 고교 영어 선생을 하다가 아시아 국가에 관심이 많아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홀든은 당초 2년 간 LG인화원과 계약을 맺고 입국 했으나 한국이 좋아 한 차례 계약을 연장했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찜질방에서 땀내고 이태원 등 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한국 매니어'가 됐다.
"한국인들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도 학생을 가르쳐 봤지만 한국인들의 학습 열기가 뜨겁고 수준도 훨씬 높은 것 같습니다.
" 홀든은 어린 학생은 물론 나이 든 직장인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학원에 다닐 정도로 한국인들의 '영어 열기'는 정말 세계적이라며 놀라워 했다.
캐나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지낸 홀든에게 영어 회화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영어 공부는 어린 나이에 빨리 시작할 수록 좋으며,조금씩이라도 매일 하고 적극적(active)으로 말하라"고 조언했다.
인화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활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빠른 속도로 개선된다는 설명이었다.
'토스트마스터즈 LG'는 지난해 상반기 출범 이후 주례 모임을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인화원 소속 네이티브 스피커들은 월례 모임에 전원 참석하고 있다.
한국에서 9년째 생활하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 대니얼 리내릭(Daniel Linaric)은 "한국의 회사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한국의 글로벌화에 조그만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면서 "외국인에게도 따듯한 정을 가진 한국에 적어도 10년은 더 살고 싶다"고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이날 수업은 당초 예정 보다도 30분이 지난 9시가 다 돼 끝났다.
수업을 마치고 어둠 속의 인화원 정문을 빠져나가는 토스트마스터즈 회원들을 지켜보면서 '지금은 글로벌 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