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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매서운 칼바람 속에 ㈜탑헤드비전(대표 이은석 www.tophead.com)의 임원 몇몇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브라질. 아직까지 직항 노선이 없는 브라질까지는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이들의 어깨에는 회사의 명운(命運)이 걸린 중책이 떨어진 상태였다.

'남미 관통 대륙횡단철도 프로젝트.' 총 연장 4500km에 달하는 대륙횡단철도 사업은 브라질 '마또그로수 두술'(Mato Grosso do Sul) 주(州)에 위치한 판타날(Pantanal)과 칠레 볼리비아 파라과이 및 아르헨티나의 안데스지역을 관통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1차 공사는 브라질의 대표 항구인 산토스ㆍ파라과나 항(港)에서 칠레의 안토파가스타ㆍ아리카 항(港)을 연결하는 2100km의 대규모 철도건설 사업이다.

㈜탑헤드비전 임원들의 임무는 대륙횡단 철도건설사업 중 1차 공사에 해당하는 2100km 구간 시행사업의 확약서를 받아오는 일이었다.

단단히 각오하고 브라질 땅을 밟았지만 그곳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터였다. 브라질은 '브릭스(BRICs)'국가 중 하나로 러시아 인도 중국과 더불어 이미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기회의 땅'. 세계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인구 27억명의 거대시장이라는 점에서 브릭스에 눈독을 들이는 업체들이 당연히 많아졌고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열기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탑헤드비전은 사업 시행권을 얻기 위해 브라질 정부와 지난 3년 동안 수없는 협상을 거듭했다.

경쟁업체들은 "한국기업은 브라질 발전에 기여를 못 한다", "탑헤드비전은 브랜드도 없는 작은 회사"라는 등의 악성 루머를 퍼뜨리며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근성과 도전의식으로 똘똘 뭉친 '작지만 강한' 한국기업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탑헤드비전 관계자들을 비롯해 동행한 한아엔지니어링 정공일 대표는 브라질 국무총리 겸 대통령비서실장과 마또그로수 두술 주 주지사 및 하원의원, 연방기획예산처 장관 등과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당초 한국방문단은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문했으나, 대통령에 재선돼 취임 2주차의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터라, 대신 디우마 로세프 대통령 비서실장 겸 국무총리를 만난 것.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약 1시간 동안의 회의. 마침내 ㈜탑헤드비전은 안드레 뿌치넬리 주지사가 서명한 확약서를 연방정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건네받았다. 브라질 대륙을 횡단하는 70조원 규모의 철도사업 시행사로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디우마 로세프 국무총리는 ㈜탑헤드비전과 한국철도기술공사 등 국내 컨소시엄 회사들이 그동안 보여준 노고를 치하하면서 대통령 보고를 거쳐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약속했다. ㈜탑헤드비전은 현재 경제 및 기술 타당성 조사를 맡아 현지 밀착마케팅에 돌입한 상태다.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 건설사업의 컨소시엄 업체로는 시행 주간사인 ㈜탑헤드비전 이외에 부산 신항만 설계 및 감리업체인 항만전문기업 한아엔지니어링(대표 정공일), 철도기술 설계 감리기업인 한국철도기술공사(대표 신종서) 등 6개사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연방정부가 공식입장을 밝히면 한국철도기술공사와 한아엔지니어링은 시행사인 ㈜탑헤드비전으로부터 설계 및 감리 업무에 대한 하청을 받아 관련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브라질 횡단철도 시행사로 선정됨에 따라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탑헤드비전은 향후 공사소요 자금 모집과 관리는 물론 관광을 위한 객차 및 화물 수송용 철도건설공사 수행, 그리고 운영권을 30년 동안 갖게 된다.

㈜탑헤드비전 이은석 대표는 "확약서를 받음에 따라 우리는 브라질 주정부가 발주한 철도사업의 전체 시행주관사가 되는 권리를 법률적으로 인정받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이미 4차례의 계약 확인과 승인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연방정부와의 본 계약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해외철도건설 사상 최고액 수주 달성을 눈앞에 둔 ㈜탑헤드비전은 브라질 연방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최근 미국 FS금융그룹과 MOU를 체결, 재원조달 문제도 해결했다.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되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물류혁명'이 일어나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통적인 물류수송방식에 비해 운송거리가 무려 7500km나 단축되고, 운송 일수도 약 10일가량 줄어 물류선박들의 연료비와 운송비가 대폭 절감되기 때문.

브라질에도 이번 철도사업은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을 구축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선된 룰라 브라질 대통령도 재정확대와 외화획득을 위한 핵심 사업으로 대륙횡단 철도건설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다.

브라질의 거대 철도사업 수주를 계기로 우리 기업이 남미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교각 역할을 하게 된 ㈜탑헤드비전의 이력은 이색적이다. 지금은 해외 철도건설 사업에서 큰 몫을 해내고 있는 기업이지만 과거 듀얼모니터로 국내외 60여건의 특허를 획득한 정보통신업체가 모태다. 1996년 설립돼 '탑헤드모니터'라는 특허기술을 확보했던 이 회사는 부동산과 해외철도사업 시행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시행업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TV를 보면서 동시에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두 화면 모니터'를 일컫는 탑헤드모니터는 해외 시행사업과 함께 이 회사가 차세대 캐시카우로 역점을 두고 있는 핵심 사업.

㈜탑헤드비전은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사업 외에도 공사비 20조원에 달하는 브라질 초고속전철사업, 브라질 신항만 건설사업, 약 7조원 규모의 미국 플로리다 철도건설사업, 로스앤젤레스~라스베이거스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도 각각 참여할 예정이다. 사업영역 다각화는 꾸준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일환으로 대두유공장과 바이오디젤공장 운영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브라질 현지 6만평 부지에 건설되는 대두유공장은 지난 1월 기공식을 가졌다. 공장 완공시점인 내년에 중국 수출을 겨냥,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며 공사비는 총 300억원이 투자된다. 브라질 현지기업인 카이젠그룹이 30%,㈜탑헤드비전이 70%의 지분을 갖는 대두유공장은 브라질 현지 법인체로 운영된다.

미래사업의 일환인 바이오디젤 및 알콜 공장 사업 역시 브라질 현지의 토지를 대여 받아 운영하는 방식이다. 대체연료인 바이오디젤을 자동차 연료나 정밀기계의 윤활제로 공급한다는 게 사업골자다.

'팔색조' 같은 사업전개와 끊임없는 혁신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는 ㈜탑헤드비전의 남미 진출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재섭 기자 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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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은석 대표

"벤처정신으로 현대판 실크로드 재현"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는 고대 동서양을 이었던 '실크로드'가 남미대륙에서 구현되는 거대 사업입니다.

한국인의 투지로 이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재현해 내겠습니다."

브라질 철도사업에 사활을 걸었다는 ㈜탑헤드비전 이은석 대표의 말과 표정에는 결연함이 묻어있다.

그는 철도사업의 시행권을 실질적으로 손에 쥐게 된 것도 비장한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브라질에서 일군 쾌거는 단지 인맥이 넓다거나 운이 좋아서 실현된 게 아닙니다.

관련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치밀한 사전준비와 시장조사를 해왔으니까요.

그 바탕에는 한국기업도 해낼 수 있다는 도전정신이 깔려 있었지요.

2005년부터 수주 준비 작업을 같이해온 브라질 카이젠그룹 칼로스 회장, 한국철도공사 신종서 대표, 한아엔지니어링 정공일 대표의 공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그는 이런 거대한 시행사업은 변화와 요구에 날렵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오히려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브라질 정부를 움직인 두둑한 배짱도 특유의 벤처정신에서 비롯됐다.

70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줄 확보가 시행 사업권 획득의 관건이었지만, 미국 FS금융그룹을 설득하는 힘겨운 작업 끝에 이를 해결했다.

"지금까지는 준비 작업이었고 본격적인 사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궤도ㆍ항만ㆍ철도ㆍ차량ㆍIT 등 컨소시엄 참가기업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자신있습니다.

브라질 인접국인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와 협력조정 및 환경영향평가 등 대외적인 협력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민간 기업인으로서 경제적ㆍ외교적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는 이은석 대표. 현대판 태평양 실크로드 건설에 뛰어든 오너의 도전과 열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