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2년차인 대기업 중간 간부 이성환씨(가명ㆍ42)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말 끝마다 토를 달고,시키는 일마다 "왜요"라며 설명을 요구하는 1~2년차 신입사원들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병원을 찾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한 신입사원의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항의성 전화였다.

"인사고과 점수 때문에 아들이 연봉협상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며 꼬치꼬치 이유를 따져묻는 어머니 앞에서 이씨는 할 말을 잃었다.

한국 사회가 늘어나는 '헬리콥터 보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취업포털 커리어넷(www.career.co.kr)이 공동으로 1980년 이후 출생한 대졸 신입사원 6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상당수가 헬리콥터 보이의 성향을 보였다.

'부모님이 직장 선택에 얼마나 많이 관여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 618명 중 165명이 '부모가 직접 지원회사를 찍어 주었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 꼴이다.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의논하는 정도'라고 답한 응답자까지 포함하면 부모가 자녀의 직장 선택에 관여하는 비율은 50%를 넘었다.

이들 부모는 자녀가 입사한 후에도 직장 문제에 시시콜콜 간섭했다.

응답자 부모의 20% 정도(135명)가 '직장 내 문제 발생시 회사로 직접 전화를 건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81명은 강하게 '문제해결을 촉구'했고 54명은 '상황에 대해 문의'했다.

헬리콥터 보이는 직장 일뿐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야 할 배우자 선택 과정에서도 '엄마'의 영향을 받는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한 커플매니저는 "어머니와 유달리 친한 요즘 남성 회원들은 어머니에게 여자친구에 대해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구분하지 못해 인연을 깬다"며 "한 남성 회원이 어머니에게 '상대 여성이 두 번째 만남에서 자신에게 목도리를 둘러주었다'고 말했다가 남성의 어머니가 '그렇게 가벼운 여성은 만나지 말라'고 해 만남이 중단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신과 전문병원인 연세Yoo&Kim의 유상우 전문의는 이러한 헬리콥터 보이 신드롬의 원인으로 한국 어머니의 지나친 '아들사랑'을 꼽았다.

유씨는 "갓 태어난 아이는 처음엔 어머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점점 커가면서 아버지와 사회로 관심이 옮아가야 정상"이라며 "하지만 엄격한데다 직장생활에 바쁜 아버지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어머니와 아들의 정서적 분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이 때문에 헬리콥터 보이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신입사원이 된 헬리콥터 보이들의 사회 적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부모가 찍어 준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과 스스로 노력해 입사한 이들의 경쟁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용어풀이]

헬리콥터 보이(Helicopter Boy)=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간섭을 멈추지 않는 부모를 일컬어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라고 부른 데서 파생된 용어. 헬리콥터 부모의 과잉 보호를 받고 자라나 부모와의 애착이 유난히 강한,1980년대 이후 출생한 남성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