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프리드먼이 꽃을 피운 '통화주의(monetarism)'는 경제 활동의 중요한 결정 요인을 화폐 공급에서 찾는다.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화폐 공급량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자는 주장이다.

프리드먼은 1929년 대공황도 경제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줄임으로써 야기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을 늘리기보다는 통화량 조절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도 통화량 감축을 주장했다.

감세와 규제완화,정부 지출 축소를 앞세운 이른바 '레이거노믹스'가 통화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통화주의자들은 그러나 정부와 중앙은행이 함부로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화정책을 준칙에 입각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K% 룰'이다.

'K% 룰'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일정한 기준에 의해 통화 공급량을 결정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중앙은행이 임의로 통화 공급량을 조절해서는 안 되며 시장 참가자들이 통화 공급량을 예상할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을 앞세운 통화주의는 길게 보면 애덤 스미스,맬서스,리카도로 이어지는 고전학파 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전학파는 인간의 이기심을 경제행위의 동기라고 봤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개인들이 경제 활동을 하려는 인센티브를 줄이고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극단은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에서 나타난다.

즉 시장 기능에 의해 모든 자원의 최적 배분과 완전고용 등이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신(新)고전학파(네오 클래시컬)'의 창시자인 앨프리드 마셜은 완전경쟁시장의 효율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스 학파가 득세하게 된다.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프리드먼을 앞세운 통화주의가 우위를 점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