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의 실천으로 유명한 사와 구니히코(澤邦彦) 후지전기홀딩스 고문은 "기업의 성패는 임직원들이 스스로 일하도록 만드는 '동기 부여'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임직원들에게 행복감을 못 주는 기업은 결코 좋은 회사가 아니고,직장에서 보람을 못 느낀다면 그 또한 좋은 인생이 아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8∼10일까지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기간 중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와 대담을 가진 사와 고문은 삼성그룹의 성공 원동력을 "경영자의 훌륭한 경영철학과 리더십"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 대담 =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 >

○박준성 교수=일본이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 부활한 모습이다.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사와 고문=일본 경제 부활의 일등공신은 민간 기업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기업들은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군살을 빼고 '근육질'로 몸매를 바꾸었다.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때마침 중국과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루면서 일본 기업들의 수출도 크게 늘었다.

캐시 플로(현금 흐름)가 좋아지자 일본 기업들은 참아왔던 설비투자를 재개했다.

근로자들의 수입이 늘면서 소비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박 교수=상당수 일본 기업들이 불황을 이겨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봉제 등 성과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은 '종신 고용'의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 부작용은 없나.

○사와 고문=일본 기업의 연공 서열주의는 차츰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성과급이 도입되면서 의욕을 상실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중요한 건 연공서열제든,성과제든지 간에 열심히 일하고 싶은 동기를 임직원들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지전기그룹이 1991년 도입한 '업무 난이도' 및 '업무 성과'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시스템은 유용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더 이상 근속연수에 비례해 저절로 연봉이 오르지 않는다.

'어떤 업무를 맡았느냐''성과는 얼마나 냈느냐'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근로자들은 스스로 노력하게 됐다.

○박 교수=후지전기홀딩스는 종신고용을 유지하면서 불황을 넘겼다.

최근에는 종신고용도 모자라 정년을 65세로 늦추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인가.

○사와 고문=후지전기홀딩스의 정년은 원래 60세다.

그러나 베테랑 근로자들의 경험을 살리고,이들의 노후생활도 돕기 위해 근로자가 원할 경우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는 근로자가 57세가 되는 시점에 언제 회사를 그만둘 것인지,60세 이후 근무는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묻는다.

선택은 근로자 몫이다.

원하는 퇴직 연령,주당 근무일수,하루 근무시간을 모두 근로자가 정할 수 있다.

예컨대 '63세까지 하루 4시간씩 주3일 근무하겠다'고 정할 수도 있다.

후지전기홀딩스는 정년 퇴임 후 재고용하는 형태가 아닌 정년 연장인 데다 퇴직 후 근무형태를 근로자가 정한다는 점에서 일본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춘 베테랑을 더 오래 활용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정년 연장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년 연장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없다.

○박 교수=신입사원을 뽑는 것에 비해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은가.

○사와 고문=후지전기홀딩스는 각 근로자들이 담당하는 업무의 난이도와 실제 거둔 성과에 따라 보수를 주기 때문에 해당 근로자가 보수 이상의 성과를 올린다면 전혀 부담이 안 된다.

나이에 관계없이 성과가 떨어지면 임금도 줄어든다.

현장 작업자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기술이 쌓이기 때문에 임금이 근속연수에 비례하지만,힘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개 35세부터 임금이 하락한다.

관리직도 마찬가지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나이가 들수록 높은 연봉을 보장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떨어진다.

○박 교수=단순 반복업무에 대해서도 성과를 따지는 건 어렵지 않은가.

○사와 고문=개인별 능력이 주는 차이는 크다.

예컨대 고객에게 커피를 권하는 일만 해도 직원의 능력에 따라 성과는 천차만별이다.

유능한 직원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뒤 커피를 건네 고객의 감동까지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이 경우 고객 만족도를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한국의 대기업 근로자는 임원이 못 되면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반면 고령화는 마치 일본의 1980년대 상황처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시기상조이며,그 대안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와 고문=후지전기그룹의 임금체계도 임금피크제와 비슷하다.

60세 이후 근로자의 임금은 대개 그 이전의 65% 수준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맡은 업무의 종류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만큼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은 60세 이후에 더 많은 임금을 받기도 한다.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비용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성과가 떨어지는 고령 근로자는 삭감된 임금을 받아들이든가,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 교수=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 달리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다면.

○사와 고문=일본도 2차 세계대전 후 20년 동안은 노사 대립이 극심했고,격렬한 노동쟁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본가와 경영자는 '근로자 없이는 기업을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근로자는 '회사가 없으면 근로자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됐다.

상호 신뢰가 생긴 뒤로는 안정된 노사관계가 이어졌다.

지금도 일본 기업들은 매년 2~3차례 경영협의회를 열고 경영진과 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회사의 경영 방침을 논의한다.

노사의 입장이 다른 만큼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은 안 된다.

노사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설적인 주장이어야 한다.

○박 교수=독특한 인재경영론으로 유명한데.

○사와 고문=직장인들이 일하는 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높은 보수만이 근로자에게 행복감을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만든 제품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편해진다''나의 일은 사회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보람이 더 큰 충만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평균수명 80세의 절반인 4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하루의 절반인 12시간을 업무를 위해 쓴다.

인생의 절반을 바치는 업무에서 보람을 못 느낀다면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기업 역시 이런 사람들의 집합체이며,이런 사람들에게 일할 장소를 내주는 곳이란 점에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해 사회가 지불하는 대가가 기업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상회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업의 이익이 된다는 얘기다.

○박 교수=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한국기업들의 인재경영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사와 고문=삼성이 오늘날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경영자의 빼어난 리더십과 훌륭한 경영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의 경영자는 전체 근로자들에게 적절하게 동기부여를 한 것 같다.

경영진이 근로자들에게 동기부여를 제대로 못한 기업은 발전할 수 없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