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정책은 그러나 설비투자와 소비확대로 이어지기 보다는 아파트가격 급등과 가계대출 증가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과 시중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부동산 함정'으로 인해 시중자금은 부동화됐고,경제 체질은 매우 허약해졌다.
○유동성 함정
한국은행은 2001년 9월 콜금리 목표치를 연4%로 인하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콜금리는 연 3.25~4.5%의 매우 낮은 박스권에서 움직였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설비투자는 늘지 않았다.
1970년부터 1997년까지 설비투자는 연평균 13.6%의 증가세를 보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설비투자가 정체 수준이다.
2000년 설비투자를 100으로 했을 때 2005년의 설비투자는 101.8에 그쳤다.
저금리의 부작용은 시중자금이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는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
가계대출(은행 기준)은 1998년말 72조6천여억원에 그쳤으나 올해 10월에는 330조5천여억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기업들이 빌린 자금은 1998년말 137조3천여억원에서 올해 10월말 310조9천여억원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저금리가 기업투자를 촉진하기보다는 가계대출만 급증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 셈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가계는 지금 빚더미에 올라있다.
외환위기 직후 31.4%에 불과하던 우리 가계의 금융자산대비 금융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말 44.5%로 높아져 미국(32%)일본(26%)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국민소득(GDP)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외환위기 당시 12%에서 지금은 30%로 늘어나 무려 3배나 높아졌다.
○부동산 함정
아파트 가격의 지나친 가격상승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붕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최근 4~5년간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000년말 54조2천여억원에서 올해 10월말 209조6천여억원으로 늘어났다.
이같은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등에 연동되는 변동금리대출이기 때문에 금리상승기에는 대출자들의 이자비용이 급등할 수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버블이 붕괴되면서 토지구입에 열중한 법인과 금융회사가 부실해졌지만 우리나라는 가계의 부채가 많기 때문에 가계부실 심화와 개인파산 증가 등 가계발 복합불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최공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선임자문역도 "부동산 가격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게 '질서있는 조정(an ordinary slowing down)'을 유도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장혼란에 대비한 다양한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현승윤 기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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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의 함정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정책 효과를 못 보는 정책 함정(policy trap)에 빠진 지는 오래다.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 정책.'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부동산 정책뿐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올인했다.
2003년 10·29대책,2005년 8·31대책,2006년 3·30대책,11·15대책 등 굵직한 부동산 대책만도 8개에 달한다.
그러나 결국 집값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근본 원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경제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해 접근한 탓이다.
참여정부는 강남 등 특정지역의 집값 상승은 불로소득을 낳아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시각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한 세금폭탄이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었던 이유다.
수요에 비해 부족한 주택공급 대책은 언제나 뒤로 밀렸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2~3개월은 집값이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올라 또다른 대책을 부르곤 했다.
한두 번의 대책이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하자 정책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 집값은 더 오른다는 '청개구리 부동산 신화'마저 생겨났다.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추진한 기업투자 활성화 정책이나 서비스산업 육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기업투자 활성화는 재벌 규제를 위한 총액출자제한과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권 규제라는 '코드정책'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엽적인 규제를 아무리 많이 푼다고 해도 기업 투자가 일어날 리 없다.
서비스 산업은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의 이익집단들이 개방과 경쟁을 거부하고 있어 어떤 진작책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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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의 함정
한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신재승씨(33)는 이번 달에 300만원대의 월급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취직한 대학 친구들보다 비교적 많은 액수를 받고 있는 데다 작년 이맘 때보다 금액도 4%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신씨는 "식료품 구입비용을 줄일 정도로 바짝 허리띠를 죄는 데도 생활수준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조세 공적연금 사회보험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뜻하는 비소비지출의 증가속도가 소득보다 훨씬 빠른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의 3분기 월평균 소득 342만3500원의 15%에 해당하는 50만8000원이 비소비지출로 빠져나갔다.
소득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비소비지출은 14%가 증가했다.
비소비지출 증가폭은 2000년 1분기의 20.6% 이후 최대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과 비교하면 상황은 더 안 좋다.
3분기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82만2300원을 기록,증가율이 0.8%에 그쳤다.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비소비지출 부문 증가속도가 소득증가를 능가하면서 나타나는 소득의 함정에 한국사회가 빠져버리는 바람에 도시근로자의 소비의 질은 식료품 구입비용을 줄여야 할 정도로 악화됐다.
도시근로자 월평균 식료품 구입비용은 57만3100원으로 2% 감소해 작년 3분기 -1% 이후 1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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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역조건 함정
수출이 늘어나도 내수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환율이 떨어지고 교역조건이 악화돼 체감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3분기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 동향'에 따르면 3분기의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2000년을 100으로 했을 때 71.2로 사상최저치로 떨어졌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란 수출단가지수를 수입단가지수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로 1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을 뜻한다.
이 지수가 낮을수록 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든다.
올해 3분기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71.2라는 것은 6년 만에 교역조건이 38.8% 악화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8.2%,전 분기 대비로는 1.7%나 떨어졌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지난해 1분기 81.3에서 줄곧 떨어졌고 올해 2분기에는 72.4로 낮아졌다.
석유 원자재 등의 수입단가가 반도체 휴대폰 등의 수출단가와 비교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출의 순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올해 1분기 0.8%포인트,2분기 2.4%포인트로 매우 낮아졌다.
2004년의 경우 1분기 6.8%포인트,2분기 3.8%포인트로 경제성장률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서 달성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역조건이 계속 악화되면서 수출이 급증해도 경기는 크게 좋아지지 않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수출물량이 크게 늘어나 총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을 뜻하는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올해 3분기 149.2를 기록했다.
교역조건 악화의 부정적 영향을 수출물량 확대를 통해 상쇄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