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외화 유동성 부족으로 지금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고통을 겪은 데 이어 부동산 거품 문제로 또 다시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부동산 발(發)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우려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는 중남미에서 유래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1980년대 중반 외채 부담 과다로 위기를 겪은 후 10년마다 반복하고 있다.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외화 유동성은 해결했으나 국민소득(GDP)과 1인당 국민소득 순위,신용등급 등은 위기 이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거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부동산 거품 문제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에 대해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부동산 거품 형성 과정이나 거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거품을 형성한 원인을 보면 일본은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 후 엔고에 따른 경기 둔화 효과를 우려해 경기가 활황일 때 저금리 정책을 추진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을 통해 우리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을 따져보면 60% 이상이 저금리에 기인한 것으로 나온다.

청와대가 부동산 가격 급등 원인이 자극적인 부동산 기사를 싣는 언론 때문이라고 했으나 한국경제신문 등이 게재한 부동산 기사와 부동산 가격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랜저 인과관계(granger cause)'를 분석해보면 의미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아 청와대의 진단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올린 정책 대응도 일본과 유사하다.

지난 9일 콜금리 동결 조치로 수면 아래로 잠복한 금리 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주택대출 총량 규제까지 검토한 사실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다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거품을 발생시킨 주체가 일본은 토지와 중소 부동산업자가 중심이었으나 우리의 경우 주택과 가계다.

거품 정도도 일본은 정점기에 부동산 총액 비중이 GDP의 5.5배까지 급등한 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는 3.7배로 아직까지는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거품 형성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우려스럽게도 부동산 가격이 꺾이면 우리 경제가 일본보다 쉽게 장기간 침체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일본이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10년 이상 침체 국면을 지속한 이른바 5대 함정(trap)에 이미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정책 효과를 못 보는 정책 함정(policy trap)에 빠진 지는 오래다.

특히 경기 대책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책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계의 부채 부담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수익성,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은 외환위기 초기부터 반복돼 왔다.

어떤 나라든 이 상황에 놓이면 불확실성이 증대한다.

민간은 투자와 소비를 늘리지 않고 예측기관들은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낳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진다.

이 현상은 우리 경제 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정책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부동산 가격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게 '질서있는 조정'을 유도하고,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장 패닉에 대비해 다양한 완충장치(airbag)를 마련하는 데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한 정부의 상(像)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