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에 베트남은 떠오르는 신시장이다.

2003년 25억달러를 넘어선 대(對) 베트남 수출액은 2004년 32억5600만달러,작년에는 34억3200만달러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 투자법과 기업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활용은 이 나라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들에 필수적이다.

투자법에는 투자절차 및 토지사용 등에 관한 것들이,기업법에는 기업 설립과 운영에 관한 사항 등이 명시돼 있다.

지난해 11월 두 법안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 7월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베트남 진출을 준비 중인 국내 기업들에 없어서는 안 될 두 법안을 한국어로 번역한 학생이 있어 화제다.

하노이국립대 법학과 3학년 휴학 중인 최중일씨(25)가 주인공.

최씨는 이 법안이 발효되기 이전인 올 2월 한국외국어대에 다니는 선배와 함께 번역 작업을 했다.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에 유학을 온 이유 중 하나가 한국 기업과 베트남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 작업을 하는 데 애로 사항도 많았다.

특히 어려운 베트남 법률 용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법률 용어에도 사회주의 색채가 많이 가미돼 있습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힘들더군요.

우리나라 법률 용어 역시 매우 어렵고 생소한 것이 많기 때문에 한국 법전을 보며 알맞은 단어를 찾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최씨가 베트남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된 계기도 특이하다.

중학교 때까지 성악을 공부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던 최씨는 외환위기 이후 가정형편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독일로 고등학교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외환위기 때문에 그 꿈이 무산됐죠.시기를 놓쳐 한국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여러 번 가출도 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알고 지내던 베트남 지인이 베트남 유학을 추천하더군요.

아버지께서도 교역량에 비해 한국인 유학생이 많지 않은 나라인 만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2002년 1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로 베트남 유학길에 올랐던 최씨가 가장 먼저 봉착한 것은 언어문제였다.

"성조가 4성까지 있는 중국어도 한국인이 배우기 어렵다는데 베트남어는 6성까지 있어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마침 군대 영장까지 나온 상태라 1년 과정의 랭귀지 스쿨을 6개월 만에 마치고 대입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씨는 하루에 9시간씩 수업을 들으며 베트남어 공부를 했다.

영양실조에 폐렴까지 겹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 최씨는 6개월 뒤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법대에서 쓰이는 고급 베트남어를 공부하기 위해 입학 뒤 1년을 휴학한 최씨는 지난해까지 3학년 과정을 마치고 현재 호찌민에 위치한 한국 로펌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는 18∼1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한국어 통역으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베트남 현지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베트남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싶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간 교역이 늘어날수록 법률적인 면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국 유학생이 많이 나가 있는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베트남이란 생소한 땅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때까지 베트남 변호사 자격증을 딴 외국인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인 한 명씩,단 두 명뿐이다.

최씨가 자격증을 얻는다면 베트남에서 역대 세 번째 외국인 변호사가 되는 셈이다.

최씨가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인 법무법인 로고스의 한윤준 변호사는 "법학을 전공하고 베트남어가 가능한 최중일씨의 재능 덕분에 우리 로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최씨가 앞으로 한국인 최초의 베트남 변호사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다면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베트남)=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