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3일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에는 이중대표소송이나 집행임원제 등 재계를 압박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한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놓친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조항(회사기회의 유용금지) 등 세계적으로 입법사례가 없는 법안이 새롭게 추가돼 시민단체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다.

재계는 "우리나라 기업현실과 괴리가 클 뿐 아니라 기업활동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내용 일색"이라며 반대,입법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경영진 책임 무거워 졌다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이른바 '충실의무'로, 현행 상법(제382조의3)에 명문화돼 있다.

추상적인 이 문구를 좀더 구체화한 것이 이사의 '자기거래 사전승인' 조항(제397조)이다.

따라서 이사는 내부정보 등을 통한 회사와의 부당한 거래(자기거래)로 이익을 챙겨선 안 되며, 이사회에 신고해 미리 승인을 받아야 된다.

지난 6월 상법개정시안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상을 본인에서 직계존비속과 배우자, 개인회사 등으로 확대했다. 법무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이사가 부당하게 유용하여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으로 취득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이번에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독소조항'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와 장래의 사업기회라는 개념자체가 모호하고 어떤 행위가 규제대상이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전경련 관계자)는 지적이다.

이중대표소송 도입 강행

법무부는 개정안에서 재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 이중대표소송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강행키로 했다.

주주가 승소하면 이사가 배상하는 돈은 자회사로 귀속된다. 현행 상법상 소수주주가 이사의 잘못을 추궁할 수 있도록 마련된 주주대표소송을 모자회사 관계로 확장한 개념이다. 특히 비상장 자회사의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할 방법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도입됐다.

문제는 소송남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중대표소송이 증권거래법에도 도입되면 상장법인의 주주는 0.01%의 지분만으로도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법무부가 사실상 모회사 → 자회사 → 손자회사로 이어지는 3중,4중의 다중대표소송의 길을 텄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다중대표소송을 법상 명문화하기는 어렵지만 현행 규정의 해석으로도 손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한 대표소송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황금주등 경영권방어책은 없어

법무부는 기업 오너들의 회사 지배력이 약화돼 책임경영이 어려워진다는 반론 등을 감안해 집행임원제 도입 여부를 회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이사와 집행임원의 겸임도 허용키로 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의 대표적 방어수단으로 꼽히는 황금주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특별한 주식을 통해 인위적으로 경영권을 보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법무부 측 생각이다. 다만 벤처기업 등 소규모 기업에서는 '원시정관 또는 총주주의 동의'를 요건으로 제한적인 거부권부 주식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 용어풀이 ]

▶이중대표소송

자회사의 부정행위가 드러났는데도 모회사가 자회사 이사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 주주가 직접 자회사 이사들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내는 제도다. 주로 자회사가 비상장회사인 경우에 해당된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가진 회사를 말한다.

▶집행임원제도

집행임원이란 이사회가 결정한 사항을 실무에서 집행하는 임원을 말한다. 대표집행임원(CEO)이나 재무집행임원(CFO),법무집행임원(CLO),기술집행임원(CTO) 등이 그 예다. 지금은 이사회가 기업의 의사결정과 감독,집행권한을 모두 갖고 있지만 집행임원제를 시행하면 이사회는 의사결정과 감독기능만 갖고,집행기능은 집행임원에게 맡기게 된다.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자기거래 사전승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회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거래를 하도록 강요해 이익을 챙기려고 할 때 사전에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 '자기거래 사전승인' 규정이라면 회사가 할 수 있는 거래를 못하도록 하고 그 기회를 개인적으로 가로챘을 때 손해배상토록 하는 것이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