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컹거리는 군장 소리,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총소리….'

이런 소리들이 없이 전쟁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태극기 휘날리며'의 실감나는 전투신도 마치 전장에 온 듯한 생생한 소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장면의 생동감을 더하는 이런 소리들은 촬영현장에서 녹음된 소리가 아니다.

이 소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관객들이 특별히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산소와도 같은 영화 속 소리를 만드는 사람인 폴리아티스트(Foley artist)를 만나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심규종씨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폴리를 담당한 폴리아티스트다.

배우들이 촬영장을 뛰어다니며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었다면 심씨는 녹음실에서 그들의 '소리'를 대신 만들었다.

헉헉 거리는 병사의 숨소리,철컹거리는 군장 소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완전군장을 하고 녹음실을 수백 바퀴 돌기고 하고, 육박전투 장면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내려치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연기'를 했다.

장동건, 원빈의 멋진 연기도 심씨의 열연이 없었다면 반쪽짜리에 그쳤을 것이다.

폴리아티스트는 아직 생소한 직업이다.

국내 폴리아티스트들은 채 10명도 되지 않을 정도다.

컴퓨터 공학이 전공인 심씨도 우연히 폴리의 세계에 입문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학교 영상 편집실에서 일한 경험으로 영상진흥위원회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중 처음으로 폴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영화 속의 소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냥 신기해서 한 번 작업에 동참해 보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단다.

그리고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과도 딱 맞는 일이어서 주저없이 폴리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폴리가 좋아서 한국 최고의 사운드 슈퍼바이저로 꼽히는 김석원 블루캡 대표를 무작정 찾아갔다.

"운동은 열심히 해서 체력 하나는 자신있다"는 말로 김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침 블루캡은 '실미도'라는 대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첫 작품부터 최고 흥행작에 동참하는 행운이 심씨에게 따른 것.

이 후 '태극기 휘날리며'와 '한반도'를 비롯해 40여편의 영화에 참여했다.

최근 한국 영화의 '대작'들에는 빠지지 않고 심씨가 만들어낸 소리가 난다.

하지만 심씨는 "하루 하루 새로운 소리를 고민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다"며 "아직 배우는 단계"라고 겸손해 한다.

특히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소리같이 몇몇 부분에서 할리우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소리를 수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꼭 할리우드를 넘어서겠다"는 당찬 각오도 밝혔다.

폴리 작업을 하다보면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이 생긴다.

한 번은 배고플 때 나는 '꼬르륵'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도저히 소리를 만들 수 없어서 결국 하루 종일 굶고 자신의 배에서 소리가 날 때가지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공포영화를 녹음할 때 혼자서 화면을 보며 녹음을 하다보면 자신이 만든 소리에 자신이 소스라쳐 놀라는 일도 많다고 한다.

또 베드신 장면을 녹음하기 위해 다른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어야 하는 난감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폴리로 만들어진 소리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 당연히 현장의 소리인줄로만 안다. 현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거의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리아티스트'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관객들이 자신의 작업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에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폴리가 진짜 잘 만든 폴리"라는 현답(賢答)을 내놓는 심씨.

오히려 "관객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전문가의 귀로 들으면 아직 어설픈 소리가 많다"며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숨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영화 스태프들의 박봉을 익히 아는지라 조심스럽게 소득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심씨는 "짐작하시는 대로 많이 받지는 못한다. 그래도 다른 스태프들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라며 말을 아꼈다.

끈질기게 추궁한 바로는 '대략 2500만원'이 연소득이라고. 하지만 "일하는 것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폴리아티스트가 된 것에) 후회는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간에도 싱크(화면과 소리의 일치)를 연습하기 위해 앞사람과 발을 맞추게 된다"며 싫지 않은 직업병을 털어놓는 심규종씨.

"멋진 영화에서 더 감칠 맛 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는 이미 한국 영화에서 감초와 같은 존재다.

민경민(단국대 의예과)ㆍ오진우(연세대 경영학)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