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 시장이 뜨고 있다.

국내 여신전문사들이 대부업으로 간판을 바꿔달고,외국 대형 금융회사들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금융계에선 기존의 국내 대부업계가 대형 금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민금융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아니면 고리 사채업자 수준으로 전락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환기를 맞고 있는 대부업계의 현황과 전망 등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지난 6월26일 대부업체 신규 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시 생활경제과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페닌슐라캐피탈'이라는 대부업체의 등록 신청서에 있는 최대주주 항목에 '메릴린치 인터내셔널 홀딩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세계적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를 사칭하는 회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신청자에게 "메릴린치 맞느냐"는 사실 확인까지 요청했다.

메릴린치의 대부업 진출은 금세 금융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7월 초부터 영업을 시작한 메릴린치가 한 달도 안 돼 강남과 분당 지역 등을 중심으로 1000억원 이상의 신규 대출을 취급했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은행권이 공세를 펴지 못하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파고든 것.우리은행 관계자는 "메릴린치가 국내시장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 같다"며 "금융당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메릴린치의 공세를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한숨 짓는다.

메릴린치보다 먼저 이 틈새시장을 간파한 곳은 영국계 초우량 은행으로 SC제일은행의 모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뱅크(SCB).지난 5월 '한국PF금융'이라는 상호로 대부업 등록을 한 SCB는 일단 한국에서 적극적인 담보 대출영업을 할 수 있을 때를 저울질하고 있다.

국내 대부업계는 일본계 자금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씨티파이낸셜과 GE캐피털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도 신용대출 상품으로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이들은 여신전문금융업체로 등록돼 있지만 대부업체와 비슷한 연 최고 59%(연체시)의 고금리 신용대출을 주로 취급해 사실상 대부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다.

국내에서도 대부업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동양파이낸셜,뉴스테이트캐피탈 등 국내 5개 여신 전문업체들은 2003년부터 아예 여신전문금융등록업증을 반환하고 대부업으로 전환했을 정도다.

김범석 동양파이낸셜 차장은 "대부업으로 등록한 뒤 대출중개와 부실채권 매입 등으로 영업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어 할부금융을 할 때보다 영업 여건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여신전문 업체의 경우 할부금융이나 리스의 비율을 50% 이상으로 맞춰야 하지만 대부업은 그럴 필요가 없다.

또한 은행이나 여신업체는 금감원으로부터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대부업의 감독주체는 지방자치단체여서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다.

대부업 진출이 활발한 이유다.

하지만 대부업이 뜨고 있는 진짜 이유는 높은 수익성이다.

외국계의 경우 모회사가 있는 외국에서 연 6∼7%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국내에서 20% 이상의 금리로 대출영업을 할 수 있다.

마진율이 10%가 넘는다.

게다가 국내 사금융 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큰 점도 군침이 도는 대목이다.

국내 사금융 시장은 1996년 4조원에서 지난해 40조원 정도로 팽창(한국금융연구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러니 대부업계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기업형 대형사 위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재일교포 등 일본계 자본과 연계돼 있는 러시앤캐시,산와머니 등 수위권 대부업체들은 연 25% 이상 성장을 거듭하며 현재 3위권 이하 업체들과의 격차를 10배 이상으로 벌려 놓은 상태다.

양석승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장은 "일본의 경우도 1990년대 후반부터 씨티그룹이나 GE그룹이 진출하면서 대부업체의 대형화가 가속화돼 현재 상위 10개 업체가 대부업 매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