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온 한 바이어는 '아주(very)'라는 말을 한껏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0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서울 부산 대구 등지를 오가며 유럽과 중동에 한국산 제품을 팔아왔다.
"그동안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거래를 끊었다가 이번에 다시 한국 제품을 구매해볼까 하고 찾았는데 비싼 값에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의류 및 패션 액세서리 분야 아시아 최대행사 중 하나인 홍콩패션위크.이 행사에는 전세계 900여개 업체에서 참가했으며 95개국 2000여 명의 바이어가 찾았다.
한국에서는 중견 브랜드인 아테네초이 앙스모드,젊은 디자이너들의 해임달 스몰프렌드,대학생 디자이너들이 만든 디엘 지님 팜므 등 29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전시회 기간 중 한국 부스를 찾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비싼 가격에 한국제품의 구매에 난색을 표했다.
제품을 만지작하면서도 선뜻 구매를 하지 못하는 바이어들은 "품질과 디자인은 원더풀인데 가격은 …"하며 확 와닿지 않는 구매력에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전시회에 출품한 한국 제품의 가격은 중국산에 비해 최고 10배 정도 비쌌다.
캐주얼웨어의 경우 티셔츠나 민소매티의 도매가는 18~20달러.가방도 30달러를 훌쩍 넘었다.
반면 중국에서 생산한 홍콩 브랜드 의류는 10달러를 밑돌았고 중국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제품은 한국제품의 10분의 1 수준인 2∼3달러 선이었다.
중국 닝보시에서 온 한 업체 관계자는 "현지에서 대개 2.5~3달러에 민소매티를 판다"며 "2달러에 해줄 수 없느냐"고 되묻고는 "도매가 15달러 이하로는 팔 수 없다"는 한국업체 관계자의 말에 부스를 나섰다.
이번 전시회에서 외국 바이어들은 한국제품에 대해 디자인과 품질은 바이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지만 구매로까지 이어지기에는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패션 의류 액세서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라는 것.
이집트에서 온 바이어는 "한국의 원단 및 디자인이 중국 인도네시아 제품에 비해 훨씬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비싼 가격을 극복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외국 바이어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국내 업체 참가자들도 "우리 제품이 고급과 중저급 제품 중간의 어정쩡함으로 해외시장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일본인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찾는 바이어들의 까다로운 눈에 들려면 한국 업체들도 시장의 요구에 맞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