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을 수사해온 검찰의 '칼'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모럴해저드 규명으로 옮겨가고 있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의 옛 기아차 계열사들이 빚을 탕감받는 과정에서 국민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 550억원이 날아간 것과 관련해 "로비 부분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엄단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만 우선적으로 수사한다"며 공적자금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국책은행과 금융감독당국 등은 긴장하고 있다.

◆'별도의 가지'에 대해 수사 철저

14일 검찰에 긴급 체포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채탕감 과정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차 로비스트인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구속)가 2000억원대에 달하는 이들 회사의 채무를 조정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550억원의 채무를 탕감해 주는 과정에서 박 전 부총재와 이 사장이 로비의 타깃이 된 셈이다.

검찰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정리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그런 시스템을 최대한 악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의 로비는 기업구조조정 모럴해저드가 처음으로 드러난 사례인 만큼 '별도의 가지'로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당사자가 누구든 간에,어떤 기관이든 단계별로 처벌하겠다"(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는 것이다.

현재 대검 중수부는 론스타 수사와 현대차 수사,김재록씨 로비의혹 등으로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부실기업의 부채탕감 비리에 이처럼 적극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부실기업 정리시스템에서 사적 이익을 취한 범죄행위가 처음으로 확인된 데다 국민의 혈세(공적자금)를 낭비하는 데 구조조정의 책임자인 자산관리공사와 국책은행,금융감독당국이 앞장선 형국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여러 사람이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건"이라며 혐의입증에도 상당한 자신감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에따라 앞으로 금융감독당국,자산관리공사,산업은행 등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추가 단서가 포착될 경우 부실기업 정리 시스템 관련 비리 전반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당혹… 부인… 반박

부실채권 탕감의혹과 관련,전날 "당시 부실채권 매각절차는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이뤄졌다"는 해명자료를 냈던 산업은행은 검찰이 14일 박상배 전 부총재를 긴급 체포하자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업은행은 박 전 부총재가 이 같은 업무절차상 정확히 어떤 단계에서 현대차그룹의 편의를 봐줬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날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사태를 결국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로비 의혹을 부인했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로비를 받고 산업은행 등에 압력을 행사할 만한 직책이 금감원에는 없다"며 "금감원과 산업은행은 과거부터 앙숙관계라서 로비 자체도 불가능하다"고 부인했다.

캠코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실채권을 환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이를 넘겼을 뿐"이라며 "채무탕감은 이들 채권이 산업은행에 환매된 뒤 이뤄진 일이며 캠코는 지금까지 채무를 탕감해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병일·송종현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