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진출.'
올초 갤러리아 명품관 영업사원이 된 곽한별씨(29)를 두고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는 동대문에서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의류상이었다.
'마이너리그' 강타자였던 셈.'메이저' 무대에서도 그 실력이 통할 수 있을까.
곽씨가 동대문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8년 겨울.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은 곳이 동대문 의류 도매상가였다.
'되겠다' 싶은 물건을 구입해서 1주일에 두 번씩 동대문을 찾는 전국 각지의 의류 소매상들에게 나눠파는 곳이었다.
"당시 사장님이 물건 고르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니 '대박이다' 싶은 것은 놔두고 그저 그런 옷만 잔뜩 매입하시더라고요." 곽씨는 번번이 히트상품을 놓치는 주인을 보다 답답해서 직접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과 친지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투자를 받아 5000만원을 들고 도매전문몰 에이피엠에 'K&G men's center'라는 남성복 매장을 냈다.
1999년 봄이었다.
학교도 휴학하고 옷장사에 나선 곽씨.하지만 이미 거래처를 갖고 있는 소매상들을 빼앗아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좋은 물건만 갖다 놓으면 당연히 팔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특색 있는 옷을 찾아다가 가게에 갖다 놔도 어차피 며칠 지나면 다른 곳에서 다 베껴 판매하니까 쉽게 거래선을 바꾸지 않더군요."
곽씨의 예상과 달리 동대문에서는 선구안(選球眼)만으로 '홈런'을 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옷을 직접 기획·생산하기로 했다.
쉽게 베낄 수 없는 옷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오전에는 백화점을 돌며 시장조사를 했고,오후에는 남들이 쓰지 않는 특이한 원단을 찾기 위해 광장시장을 헤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프라다' 가방이었다.
명품브랜드 프라다가 일반적인 나일론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가공한 합성섬유 소재의 원단을 사용,여성용 가방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곽씨는 이 원단을 남성용 점퍼에 응용해보기로 했다.
그 넓은 광장시장에 이 원단을 파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었다.
과감하게 6개월 공급분을 '입도선매'했다.
"지금은 일명 '프라다 원단'이라고 해서 아주 흔하지만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그게 오히려 우리 제품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곽씨가 내놓은 '프라다 스타일' 점퍼가 인기를 끌자 경쟁업체들에서도 이를 베끼기 위해 나섰지만 원단이 없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이 점퍼로만 한 달 평균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소매 점포 두 곳을 인수해 직접 판매도 했다.
디자이너를 포함해 직원도 15명으로 늘었다.
동대문에 '알바'로 뛰어든 지 2년 만에 '사장님' 소리를 듣게 된 것.
2001년 3월 곽씨는 월 매출 1억원의 사업체를 형에게 맡기고 군에 입대했다.
2003년 제대한 그는 동대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디자인을 참고하기 위해 백화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언젠가는 진짜 '명품 백화점'에서 옷을 팔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곽씨는 사업을 하느라 1년밖에 못 다닌 대학을 마저 다닌 뒤 갤러리아 백화점 입사시험에 합격했다.
신입사원 교육을 맡고 있는 가재학 갤러리아 백화점 부장은 곽씨의 교육성적이 동기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귀띔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트렌드 분석에서부터 의류의 기획·생산,마케팅,판매에 이르기까지 유통의 전 과정을 꿰고 있는 곽한별씨는 우리 백화점에 꼭 필요한 사람이죠.매년 한 명씩만 이런 인재가 들어와주면 좋겠어요."
곽씨가 '메이저' 무대에서도 '홈런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란 얘기일까?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