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 '코리아게이트'의 주인공이었던 박동선씨(70) 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를 위해 유엔을 무대로 불법 로비활동을 한 혐의로 미국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검찰은 14일(현지시간) 이라크를 상대로 한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둘러싼 불법로비 및 뇌물수수 혐의로 박씨 등 관련자들을 기소하거나 관련국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 검찰이 밝힌 혐의 내용은 지난 90년대 중반 유엔의 정식 등록 로비스트가 아닌 박씨가 경제제재 중인 이라크가 생필품 구입을 위해 석유 수출을 할 수 있게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유엔이 채택해 주도록 유엔 관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또 박씨는 'CW-1'이란 암호명으로 알려진 한 이라크계 미국인 로비스트를 통해 로비 비용과 '자신의 사람들'을 돌볼 뇌물로 97년 말 1백만달러를 받은 것을 포함,2백만달러 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밝힌 '박씨의 사람들'은 유엔의 고위 관료로 추정되고 있을 뿐 박씨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았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씨는 유죄가 입증되면 최고 5년형과 25만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박씨는 77년 박정희 정권을 위해 미국 쌀 수출대금 커미션을 부풀려 그 중 일부를 32명의 전·현직 미국 의원들에게 뿌린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사면 조건으로 의회와 대배심에서 증언했으며,그의 증언으로 전·현직 의원들이 사법처리되는 등 워싱턴 정가에서 워터게이트 이후 가장 큰 파문을 일으켰다. 뉴욕 검찰은 박씨 외에도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와 석유를 거래하면서 후세인 정권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텍사스주 석유회사 베이욜의 1인주주 데이비드 차머스와 불가리아 석유거래업자 루드밀 디오니시에프를 체포하고 영국 석유거래업자 존 어빙은 영국에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한편 이 사건이 터지자 종적을 감춘 박씨는 15일 현재 일본 도쿄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전화인터뷰 요청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친척 P씨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해왔다. P씨의 설명에 따르면 박씨는 "고생하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해서 (당사자들을) 연결시켜 준 것은 사실이고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일부 받긴 했지만 2백만달러(약 20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미국의 수사 착수 배경에 대해서는 "유엔이 부패했다는 걸 알리고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끌어내리려는 목적으로 10년이나 지난 일을 끄집어낸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박씨는 조만간 국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계획이지만 국제관계를 감안해 시기와 귀국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P씨는 덧붙였다. 뉴욕=고광철 특파원·최규술 기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