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부총리 선임을 비롯 주요 공기업·정부산하기관장 임명을 놓고 '백지화'와 '재공모'를 거듭하는 등 인사에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7일 사임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후임자 임명과 관련,당초 물망에 올랐던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외에 한덕수 국무조정실장과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 등을 후보로 추가한 가운데 '장고(長考)'를 계속하고 있다. 청와대가 부총리 선임에 이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여론 검증'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로,신임 부총리 임명 지연에 따른 행정 공백은 물론 자칫 최종 임명에서 제외된 후보자들에게 불명예를 안기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이런 인사난맥은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장 선임 과정에서 더 극심하다. 청와대가 지난 10일 인사추천위원회에서 KOTRA 사장추천위원회가 올린 전직 장관 등 3명의 후보들에 대해 모두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재공모를 실시토록 한 게 단적인 예다. 이에 따라 KOTRA는 석달째 사장 공백 상태다. 현 정부 들어 도입된 인사공모제가 '낙하산 인사'를 막는다는 취지는 퇴색한 채 공모에 지원한 인사들에게 상처만 입히는 '흠집내기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정부산하기관장 공모에서 유력한 최종후보로 올랐던 한 인사는 "이름이 언론에 공개된 상태에서 낙방하는 바람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며 "처음부터 들러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예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산업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KOTRA 사장 공모의 경우 회사 안팎에서 후보들에 대한 투서와 매터도가 난무했다"며 "확인되지 않은 음해로 응모자들이 상처만 입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공모에 응했다가 '버려지는' 전문가들이 속출하면서 공직 공모 기피증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재공모 파문 직후 "정말 좋은 사람은 괜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경쟁하는 것도 꺼려 응모를 안한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특정인물을 의중에 둔 채 '무늬만 공모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허울뿐인 공모제를 없애고,인사권자가 인사권을 당당히 행사하는 게 가뜩이나 취약한 인재풀을 지키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먼저 명확한 평가기준을 제시하고,그 기준에 따라 소신껏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전문가들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한다면 그나마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이라는 공모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석·안재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