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영화를 리메이크한 '나를 책임져,알피'(2004년)는 뉴욕의 바람둥이 리무진 운전사 알피가 다섯 여인과 벌이는 애정행각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당시 마이클 케인은 이 작품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신작의 주인공 주드 로는 이미 할리우드의 정상급 스타다.


'피플'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 뽑은 주드 로의 매력을 살려 리메이크작의 진부함을 상쇄하려는 전략이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쿨'해진 남녀관계다.


여성들은 알피에게 불평이나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는다.


서로간에는 육체의 쾌락만을 탐닉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마이클 케인은 임신한 여인에게 낙태를 강요했지만 주드 로는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방종의 끝은 허무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로는 드물게 해피엔딩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섹스에 빠져든 뒤에는 늘 이별의 아픔이 오고 자유로운 삶에는 불안과 고독이 뒤따른다.


알피가 추구했던 '손해보지 않는' 남녀관계는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다.


갈등이 없는 '쿨'한 남녀관계는 사랑이 없는 연인 사이일 뿐이라는 의미다.


이같은 뚜렷한 주제의식이 이 리메이크 영화를 전작과 차별화할 수 있게 한다.


주인공 알피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보조 캐릭터의 설정도 뛰어나다.


아내에게 군림하다가 결국에는 버림받는 중국인 남자는 알피의 미래를 암시한다.


아내의 마음을 얻지 못한 중국인 남자는 육체관계만 맺으려는 알피와 다르지 않다.


리무진 운전사라는 직업은 바람둥이 주인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우아한 차량은 알피가 추구하는 화려한 생활을 대변한다.


그러나 리무진은 그의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것이 아니다.


현대 영화로는 드물게 알피가 화자로 등장하는 방백(알피의 대사가 관객에게는 들리지만 그의 곁에 있는 여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상황) 방식을 도입한 것도 관심을 끈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정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관객들이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21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