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전격 사임] 中권력 승계 후진타오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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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사임에 따라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61)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승계,중국 3대 최고 요직을 완전히 장악했다.
2002년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지 2년 만이다.
지금까지는 군사를 장악하지 못해 권력기반이 불완전했다.
후 주석은 파벌이 없으며,카리스마가 아니라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권력과 권위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이전 중국 지도부와 차별된다.
중국이 새 시대를 맞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모범생에서 노련한 정치인으로=후진타오는 노련한 정치인이다.
중국 최고 권력층인 상하이방과 결탁하지 않고도 1992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정치국상무위원겸 중앙위원회서기로 발탁,권력의 최정상부에 진입했다.
92년 권력서열 7위,97년 5위로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겸손하기로 유명하고 은인자중해 적을 만들지 않는다.
이 같은 노련함의 비결은 명석한 두뇌다.
후 주석은 칭화대학교 수리공정학과를 하나만 빼고 전 과목에서 만점을 받고 졸업했다.
졸업 후 3년간 사회에 진출하지 않고 후배들의 정치교육을 담당하는 정치보도원을 지냈으며, 이때 형성된 인맥은 후 주석의 정치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칭화대는 50년간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를 3백명 이상 배출했다.
◆파벌 불용,합리적 의사 결정=후 주석은 기존의 권력 집단과 인맥을 무시하고,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벌을 믿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당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칭화대 인맥이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후 주석은 개인적으로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
이는 전국이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른바 '소요파'를 고집해 살아남았고,상하이방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도 정치적으로 성장해온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