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상당기간(considerable period)'과 같은 문구에 치중하는지와 시장에서는 이런 문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미 연준리가 시장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취해 왔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획기적인 변화는 지난 1989년 이후부터다. 예전의 철저한 비밀유지 전통을 버리고 △금리변경폭의 25bp 배수로 운용 △정책변화 방향을 리스크로 평가 △회의 발표문 공표 등을 통해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제고해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연준리와 시장 간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졌고 연준리도 시장에 잡음(noise)을 줄 수 있는 불확실한 조치를 가능한 한 배제해 왔다. 문제는 지난해 이후 연준리의 의지를 확실하게 비출 수 있는 금리변경과 같은 수단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기금금리는 1%로 4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가를 감안한다면 금리를 더 이상 내리기가 어렵다. 이 상황에서 연준리가 경기부양 의지를 시장에 확실하게 비추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동안 지금의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문구를 발표문에 포함시켜 시중실세금리를 조정하는 길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해 3·4분기 이후 잠재수준을 웃도는 높은 성장세에도 불구,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지 않음에 따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제적인 정책대응을 중시해온 과거의 전통을 감안한다면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연준리가 방관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리가 경제와 '겁쟁이 게임(the game of chicken)'을 한다고 비판했다. 다행히 올해 들어서는 잠재수준을 웃도는 성장세가 지속되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됨에 따라 첫 연준리 회의 발표문에서 '상당기간'이란 문구를 삭제하는 조치를 내렸다. 겁쟁이 게임이란 두 사람이 자동차를 마주보고 달리다가 핸들을 꺾지 않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으로 사망이나 큰 부상을 피하기 위해 먼저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로 조롱받는다. 이 개념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운용시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게임이론 모델 등에서 자주 원용돼 왔다. 결국 지난해 이후 연준리가 금리변경보다는 '상당기간'과 같은 문구에 치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한 것은 경기판단이 애매모호하고 정책수단이 제약된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당기간'이란 문구가 빠진 것을 본격적인 금리인상의 신호로 볼 수 있을까. 종전과 달리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은 생산성 증가와 같은 공급측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잠재수준을 웃돈다 하더라도 연준리가 금리인상 결정때 가장 중시하는 인플레는 안정되고 고용사정은 확실하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번 첫 연준리의 발표문에서 '상당기간'이란 문구가 빠진 것은 겁쟁이 게임을 한다는 비판을 의식하면서 필요시 언제라도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는 정책적인 여지(room)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는 인식과 달리 금리인상이 단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첫 회의 이후 혼돈에 빠졌던 국제금융시장은 조만간 안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