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1:38
수정2006.04.04 01:43
개혁과 변화를 '코드어(語)'로 내세워온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 어렵게 됐다.
곳곳에서 제기되는 시비로 이따금씩 불편함을 내비쳐온 속마음도 더 편치 않아 보인다.
노 대통령은 31일 '가장 가까운 곳'의 비서관인 양길승 제1부속실장이 부적절한 향응을 대접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것도 내부감찰 결과가 아니라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난 뒤에 '사실확인' 차원의 보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급 고위직인 총리 비서실장이 최근 우리 사회의 '블랙홀'인 굿모닝시티 자금 수뢰의혹으로 검찰에 불려간 바로 다음 날이다.
공휴일 새만금 간척현장에서 가족동반의 헬기 관람이 부적절했다며 비서관 3명의 사표를 수리한지 불과 1개월여만에 터진 악재다.
다른 곳도 아닌 권부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부적절한 처신들은 노 대통령이 전력투구중인 사회 각 부문의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분신으로 일해야 할 비서관이 자칫 '호가호위'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바로 같은 자리에 있던 장학로 비서관의 거액 수뢰나 김대중 전 대통령때 일부 행정관급의 청와대 실무자가 스캔들에 연루됐던 것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듯하다.
양 실장 사건을 처리해온 청와대의 처사에도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양 실장이 술자리를 가진 직후 이에 대한 소문이 지역에 나돌면서 민정수석실에서는 조사를 벌였다.
청와대는 그러나 별도의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은 채 윤리담당관인 이호철 민정1비서관이 '주의'만 줬다.
노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도 않았다.
노 대통령이 이날 재조사 지시를 내린 것을 보면 어물쩡 넘어가려다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제대로 조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앞서 새만금 헬기관람 사건 때도 청와대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에야 사실 파악에 나서면서 사표를 받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 과정을 보면 청와대는 비서관 행정관 등 직원에 대한 내부감시 기능이 부실하거나,아니면 청와대 밖으로 드러난 뒤에야 '조치'를 취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게 일처리를 했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