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인 D사 경영지원팀에 근무하는 한승훈 대리(36). 입사 7년차에 접어든 그의 하루 일과는 서울 역삼동의 한 토익학원에서 시작된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새벽 5시40분. 매일 저녁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지만 다가온 승진 심사에 대비하기 위해 새벽 공부를 강행 중이다. 기업들의 연봉제와 상시구조조정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제 별 과오가 없으면 부장까지 승진하는 것은 옛 얘기가 됐다. 과장 차장 등 중간 간부급부터 승진경쟁이 과거 이사 승진 못지 않게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SDI 등 상당수 기업들이 승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점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등 직장인들의 승진 문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LG칼텍스정유는 오는 2004년 1월부터 품질혁신 활동인 '6시그마' 운동을 승진 심사에까지 확대해 일정 수준 이상 인증을 받아야 팀장(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 에버랜드는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할 때부터 '6시그마' 등급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진급 심사가 '타이트'해지면서 중간 관리자급들의 이직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직족'은 두 종류. 보다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이직을 감행하는 행복한(?) 직장인들도 있지만 과장 승진부터 '탈락자'가 속출하면서 강제 이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P사의 인사담당부장 박모씨는 "1년간 유급 휴직을 해 그 기간 동안 이직을 시도하거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중간 관리자급들을 위한 재취업 알선사이트 온오프써치(www.onoffsearch.com)에 따르면 8월 사이트 오픈 이후 채 3개월도 안된 현재 4만여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했다. 하루 평균 4백명이 넘는 신규회원이 등록한 셈이다. 이는 당초 6개월 안에 2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겠다던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실적이다. 김한석 온오프써치 대표는 "중간 관리자급들에게 이처럼 엄청난 잠재적인 전직 수요가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다"며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과 몸값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헤드헌팅 업체인 IBK컨설팅의 문형진 이사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에 나타난 부정기적인 인력 충원과 경력사원 유입이 인사 적체와 엄격한 능력 위주 승진 심사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