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발표된 삼성의 인사는 위기 관리와 구조조정에 성공한 현 경영진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극심한 경기 침체와 반도체 불황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실적을 올린 만큼 굳이 말을 갈아 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를 승진시키지 않은 것도 현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비교적 큰 폭으로 실시된 삼성의 인사는 다른 그룹들의 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경영체제 유지=삼성은 지난해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이 대폭락하는 가운데서도 전 계열사에서 6조6천억원 수준의 세전이익(추정치)을 냈다. 아무리 혹독한 여건이 되더라도 5조원 수준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체제를 확립했다고 삼성은 자평하고 있다. 위기 관리에 성공했고 향후 경영에도 복잡한 변수들이 예상되는 점을 감안,현재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는 내부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각에서 거론됐던 세대교체론을 잠재운 것이기도 하다. 일부러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계산인 셈이다. 위기 관리와 구조조정의 견인차인 구조조정본부에서 16명이나 승진한 데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회장급 경영진에서는 최소한의 세대교체를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회장급 경영진 일부가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승계 점진 추진=보수경영과 안정적인 체제유지라는 인사 구도에 따라 이 상무보도 제자리를 지켰다. 한 두 단계 승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보''자도 떼지 않았다. 전반적인 회사 경영을 파악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기 위해 경영전략을 담당하는 업무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이 상무보가 내부 기준에 따라 승진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이같은 조치는 여러가지 시선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나치게 파격적인 초고속 승진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헤아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분간 삼성의 3세 경영은 가시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 회장은 경영에 계속 전념할 것이 확실시된다. ◇특징 인사=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처음으로 본사에 외국인 임원을 선임했다. 데이비드 스틸 삼성전자 신임 상무보는 미래전략그룹에 입사한 지 3년4개월동안 총 14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최우수 외국인 스태프로 평가받아 35세의 나이에 상무보가 됐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를 거쳐 미국 MIT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대 MBA와 매킨지 컨설턴트 등 다채로운 경력을 보유한 인물. 특히 MIT대 석·박사 과정과 MBA 과정에서 전학년 최우등 성적을 유지한 천재로 삼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제조현장 근무를 자원할 정도로 적응 능력도 높다는 게 삼성의 평가. 탁월한 성과를 거둔 인물들도 발탁됐다. 특히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 중 두 명이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베이징지점 통신영업담당으로 지난 93년부터 치밀하고 꾸준한 준비를 통해 중국 CDMA사업권 획득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배승한 부장이 상무보로 승진했다. 미국 쪽으로 거의 기울던 사업을 따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캐피탈의 안성찬 부장은 업계 최초의 대출전용카드 ''아하론 패스''를 개발 시판한 후 4조5천억원의 매출과 1천7백억원의 이익을 올린 공로로 임원의 반열에 올랐다. SDI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담당 심임수 상무는 지난해 상무 승진에 이어 1년만에 전무로 승진하는 발탁의 영예를 안았다. LCD 매출과 이익을 크게 늘린 성과가 인정됐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