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이 31일 발표한 "물질특허 출원동향 분석"은 한국의 원천.핵심기술 수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질특허는 생물.화학분야 기술력의 핵심척도로 인정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선진국에의 기술예속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질특허권 부재는 로열티 등 엄청난 외화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며 첨단 정보의 신속한 입수, 바이오기술 트렌드 분석, 특허출원 활성화 방안등 정부.기업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물질특허 왜 중요한가=물질특허는 기계제조 특허 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기계부품을 만드는 방법의 경우 제조방법만 새롭게 하면 특허를 취득할 수 있지만 물질특허와 같은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는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다. 다양하게 응용될 때마다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진통제 해열제 등으로 쓰이는 아스피린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바이오 분야 등의 핵심적인 물질특허 1건은 그렇지 않은 특허 1만건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진 각국은 원천·핵심기술력을 배양하기 위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생명과학 분야에 연간 1백87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연구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은 보건을 위한 유전체응용 연구프로그램을 추진중이고 독일은 유럽내 1위의 생명공학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생명공학진흥 종합대책을 수립·추진중이다. 또 일본은 2010년까지 바이오시장 규모를 현재 1조엔에서 25조엔대로 키우고 바이오 관련 벤처기업을 1천개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물질특허 '후진국'=한국도 현재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7% 수준인 생명공학 분야 예산을 2005년까지 14%로 확대키로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엔 6천2백억원 가량으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절대 투자규모 면에서 턱없이 못 미치는데다 원천기술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미흡으로 물질특허 분야의 '토양'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외국 기업에 대응해왔다. 민주당 허운나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4년부터 현재까지 생명공학에 투자한 예산은 1조2천2백79억원에 이르지만 작년까지 국내 유전자 특허출원건(총 6백31건) 가운데 외국인 비중이 무려 61%(3백83건)를 차지했다. 특히 생명공학의 중요 분야인 생물의약 단백질 미생물 유전공학 진단시약의 경우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 2∼3배 가량 많은 특허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또 정부는 바이오벤처를 집중 육성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 중 바이오산업 분야에 특허를 출원한 중소·벤처기업은 DPI 바이오니아 제노마인(각 3건) 삼양제넥스 LTC바이오(각 2건) 등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만성적인 기술수입국인 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 결과 한국의 작년 중 기술수입이 29억달러였지만 기술수출은 2억달러에 불과,기술수입 대비 수출 비율이 7%에 머물렀다. 반면 미국은 3백30%,일본은 80%에 달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활로 찾아야=물질특허 분야는 대규모 장기투자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투자규모로 볼 때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한국이 1백억원을 투자하면 미국은 1조원을 투자하는 정도다. 특허청 박길채 사무관은 "내국인에 의한 특허는 원천기술을 응용한 용도·방법 특허가 주류를 이루는 등 특허내용 면에서도 외국에 뒤지고 있다"며 "어느 분야에 집중할지를 먼저 결정한 후 과감하게 투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태광 연구실장(미생물학 박사)은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IT(정보기술)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기술과 유전자 정보를 결합시키는 DNA칩 단백질칩 바이오컴퓨터 등의 경우 지속적인 투자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쎌바이오텍 정명준 대표는 "기능성식품 분야에선 외국기업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제조기술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