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으려면 EMS(전자기기 제조수탁 서비스) 업체들의 눈치부터 살펴라" IT(정보기술) 불황으로 전자, 정보통신업계가 시계 제로(0)의 경영난에 봉착한 가운데 전자부품업체들이 하루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는 EMS 업체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말이 일본 재계에서 대유행이다. 일본 전자부품업체들 사이에 EMS 태풍경보가 내려진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시장을 리드하는 EMS 업체는 미국, 캐나다 회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소니 등 대기업들로부터 생산위탁 주문을 받아 완제품을 만들어 납품한다. 외부 발주에 의한 작업인 만큼 가격과 생산량에서 자유재량의 여지가 없다. 최근 생산위탁주문이 급감하다 보니 적정 이윤 확보의 열쇠는 원가와 재고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렸다. 자연히 충격은 EMS에 제품을 공급하는 전자부품업체들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품업체들은 충격을 더 이상 떠넘길 곳이 없다. 전문가들은 전자 부품업체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으로 가격과 주문을 꼽고 있다. 갈수록 낮아지는 단가도 문제지만 경쟁업체가 가격을 낮췄을 경우 이미 납품한 것에 대해서도 값을 깎아 주지 않으면 안된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주문량 자체도 들쭉날쭉해진 데다 납기일 직전에 양을 조정하는 사례도 흔해졌다. 전자 부품회사들은 EMS 업체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때 자신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도록 계약서가 꾸며져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약자의 처지인지라 울며겨자먹기로 부담을 떠안고 있다. 대형 부품업체인 무라다제작소의 관계자는 "(항의하고 싶지만) 계약조건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거래가 끝"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일본 부품업체들이 항의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EMS 업체들에 끌려다니는 것은 EMS의 위상이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테크놀로지 포캐스터즈 조사에 따르면 99년 한햇동안 세계 전자기기 생산액의 11%는 EMS 업체들이 담당했으며 이 비율이 2004년이면 26%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 부품업체들은 이에 따라 전담 조직을 신설, 확대하거나 직원을 보강하는 등 EMS의 동향 파악에 안테나를 부쩍 높이고 있다. 부품업체인 TDK는 지난 4월 솔렉트론 등 미국의 대형 EMS 5사를 담당하는 특별팀을 발족시키고 정보 수집활동을 강화한데 이어 다이요유전 역시 전담부서를 설치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