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정부는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야심의 핵심은 번화한 북부지역과 낙후된 남부간 경제격차를 줄이겠다는 것. 대만에서 남북간 소득격차는 3배 이상이다. 정부의 계획은 크게 두가지. 첫째는 남부 기업들을 상업지구에 직접 연결시킬 수 있도록 고속철도를 3백45km에 걸쳐 깔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부지역에 대규모 첨단산업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대만 최대의 반도체회사를 유치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모두 4백억달러를 산업단지에 투자키로 한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타이난과 인근지역에 수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반도체 제조업과 고속철도의 궁합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란 점을 알지 못했던 것. 고속철도가 통과하면서 발생시키는 진동이 반도체 제조공정상의 미세한 작업을 방해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던 반도체기업들이 물밀듯이 빠져 나가고 있다. 호텔 식당 등 반짝 호황을 누리던 인근지역 주민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첨단산업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관련 기업들의 "참여의지"가 약해진 것도 테크노단지 건설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두가지 계획이 어떻게 이같이 충돌하게 됐을까. 바로 정부부처간 밥그릇 싸움의 결과다. 교통통신부와 국가과학위원회는 허용가능한 진동규모를 놓고 거의 3년간이나 다퉜다. 지난 1999년 결국 상위 정부기관이 중재에 나섰을 때는 이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철도건설 계약도 이미 체결된 상태였다. 첨단산업단지의 문제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대만 제2의 반도체기업이자 산업단지 최대 투자기업인 UMC는 지난 4월 싱가포르에 3억6천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당초 산업단지 공장건설에 1백50억달러를 내놓기로 했었다. 대만정부의 최상위 과학자문기구인 국가과학위원회는 첨단산업단지 실패의 가장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과학위는 철도가 산업단지 내를 통과하도록 입안한 장본인이다. 잠재적인 위험이 있으리란 판단은 했지만 진동문제가 이처럼 커다란 파장을 몰고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다. 반도체칩은 점차 작고 복잡하고 환경변화에 민감해지고 있다. 작은 진동이라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과학위원회는 뒤늦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다. 우선 철도 노선을 우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교통통신부는 건설비 추가부담을 우려, 난색을 표하고 있다. 철길을 지탱하는 콘크리트 기둥의 간격을 좁히면 소음과 진동이 줄어들지만 이 또한 비용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정리=국제부 inter@hankyung.com ] --------------------------------------------------------------- 월스트리트저널은 다우존스사의 트레이드마크로 이 기사의 소유권은 다우존스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