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김우중 회장과 국민의 정부 경제관료들은 생각하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국민의 정부 초기 경제관료는 중경회(中經會)를 골격으로 하고 자민련류가 결합한 것이었다. 자민련 케이스로 들어선 사람이 이규성 재경부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이었으나 청와대는 철저한 개혁론자들로 채워졌다. 김태동 경제수석, 강봉균 정책기획수석을 비롯해 1급과 국장들이 모두 구조조정론자들인 경제기획원 출신들도 채워졌다. 강봉균 수석의 참모였던 이근경 이윤재 조원동씨 등이 모두 동일한 라인업이었다. 당선자 캠프를 채운 유종근 전북도지사도 개혁의 선봉이었고 공정위의 전윤철 위원장도 이제 재벌개혁의 대수술을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여기에 김우중의 확대경영 세계경영이 정면에서 부딪쳐 왔다. 김우중은 "이 책상물림들이…"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그것도 대통령이 좌정한 가운데 열린 엄숙한 회의자리였다. 당연히 저주가 되돌아 왔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 사기꾼 비슷한…"이라며 역시 포문을 열었다. '책상물림'과 '사기꾼 비슷'의 갈등구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말았다. 이들의 갈등은 대우해체와 패망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과연 대우패망은 관료들의 음모였던 것인가. IMF 경제위기는 현실론자들의 몰락과 원칙론자들의 부상, 구체적으로는 학계와 기획원 출신 경제관료들의 독무대를 만들었다. 갈등 구도는 이미 80년대부터였지만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98년에는 우열이 분명해졌다. 성장론과 개혁론의 쟁패, 기업가와 관료의 대립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원인론에 이르면 이들의 차이는 분명해졌다. 개혁론자들은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를 원인으로 봤지만 김 회장은 금융시스템의 낙후를 지목했다. "국제 산업계가 새로운 강타자인 한국을 철저하게 파괴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을 세계를 무대로 싸워 왔던 김 회장은 끝까지 지우지 못했다. 내인론과 외인론의 충돌이었지만 칼자루는 결국 관료들이 쥔 것이었다. 대우 패망은 '필연'으로 귀착됐다. 대우는 파국으로 갔지만 이같은 대립 갈등구도는 불행하게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합리적 인간(경제관료)과 합목적적 인간(기업가)의 대립구도이기도 했다.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