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감축 없는 구조조정으로 한국전기초자의 서두칠 사장(63). 97년말 전기초자의 사장으로 취임,노조파업 등으로 얼룩진 회사를 우량기업으로 바꿔놓은 서 사장이 돌연 사퇴의사를 밝혀 충격적이다. 서 사장은 사퇴의 배경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일본 본사를 살리자고 한국전기초자를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는 것. "본사 이익 우선이라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원칙을 수용하지 않은 게 결국 사퇴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10일 대우재단빌딩에 있는 서울 사무소에서 서 사장을 만났다. ―급작스레 사퇴하게 된 이유는. "대주주인 아사히측은 올초부터 감산을 통한 가격유지 정책을 요구해왔다. 이는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한국전기초자의 경영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수용할 수 없었다" ―경영노선의 차이인가. "전기초자를 맡으면서 '고용은 시장이 보장한다.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지난 97년 부채비율 1천1백14%의 전기초자를 맡을 당시에도 단 한 명의 인원도 자르지 않았다. 대신 원가절감과 품질혁신을 통해 단 3년만에 상장사중 영업이익률 1위를 기록하며 회사를 완전히 정상화시켰다. 아사히의 요구대로 감산을 받아들일 경우 전기초자는 해외 수출의 제약과 이로 인한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나. "해외시장에서 전기초자와 아사히그룹 해외공장간 마찰이 빚어지고 아사히측이 감산을 요구해오면서 의견대립이 잦아졌다. 북미시장의 경우 아사히와 미국 코닝사가 합작한 CAV가,아시아시장에서는 중국 상하이(上海)와 싱가포르의 아사히 생산법인이 수출의 발목을 잡았다. 가격 경쟁력 우위에 있는 전기초자의 공격적 영업에 부담을 느낀 아사히 현지 법인이 본사에 강력히 불만을 제기했다. 아사히측은 해외생산법인의 가격결정및 영업권을 본사가 통제하겠다고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각국의 생산법인은 각각의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으며 가격유지를 위한 인위적 감산은 해답이 아니라고 강력 반대했지 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아사히와는 절대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아사히는 지난 99년 대우전자로부터 2천억원에 전기초자를 인수할 당시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찬사를 붙였다. 임기만료를 1년 앞둔 지난해에는 '5년 재계약'을 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올들어 IT시장의 침체로 아사히의 글로벌 경영전략과 충돌하면서 의견대립이 잦아졌다" ―아사히측의 반응은. 사표는 언제 제출할 것인가. "15일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할 것이다. 지난달에만 두 번이나 아사히를 방문해 10시간 넘게 토론을 벌였지만 타협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결국 아사히측은 생산관리를 제외한 판매와 마케팅권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영업권 없는 경영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차라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자 지난 5일 아사히측이 사임 의사를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해 왔다. 생산관리 담당과 관리담당 임원,감사 등도 같이 사표를 내기로 했다" ―구미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 "사표 제출로 생산라인 현장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노조에 작업거부와 같은 단체행동을 벌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전기초자와 같이 위기에 처한 기업을 멋지게 되살려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한편으론 지난 25년간의 활동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사례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도 해보고 싶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 약력 ] △1939년 2월 9일생 △1957년 진주고,1964년 경상대 농학과,1973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1975년 농협중앙회 과장 △1984년 대우중공업 이사 △1993년 대우전자부품 대표이사 △1997년 대우전자 부사장 △1998년 한국전기초자 대표이사 △저서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