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겉옷이야,속옷이야?"

요즘 패션쇼에 가면 속옷인지 겉옷인지 헷갈리는 의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번 서울컬렉션에도 거의 모든 디자이너가 속옷룩을 무대에 올렸다.

브래지어같은 탱크톱이나 코르셋처럼 생긴 원피스를 입은 모델이 무대를 활보했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속옷을 입어줘야 할 법한 의상에는 패션쇼의 관례(?)에 따라 속옷을 갖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킷 등 평범한 의상은 물론 속이 비치는 블라우스에도 노브라 차림이다.

속옷의 개념이나 역할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60년대 말 미국의 여권운동가들이 브래지어를 불태워버렸을 때부터 속옷으로서의 브래지어는 쇠퇴의 운명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점차 사라져 가는 속옷을 화려한 겉옷으로 변신시킨 이가 바로 디자이너 장폴 고티에다.

지난 78년 데뷔때부터 특유의 유머와 센스로 발군의 재능을 발휘한 고티에는 속옷을 외출복으로 변신시키는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우리 시대 패션에 터부란 없다.속옷의 아름다움을 감추어 두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패션계에서도 별종취급을 받았던 고티에의 철학은 90년대 와서야 빛을 본다.

가수 마돈나가 90년 월드투어에서 고티에가 디자인한 코르셋을 입고 무대에 올라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이후다.

이듬해 파리와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은 비치는 네글리제풍의 드레스와 허리를 조여 가슴을 강조한 속옷룩을 앞다퉈 선보였다.

늘 우아함을 강조하는 샤넬마저 브랜드 로고인 CC마크가 들어간 남성용 삼각팬티를 여성모델에게 입혔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행에 민감한 브랜드 매장을 엿보면 외출복으로 손색이 없을 듯한 속옷들이 수없이 진열돼 있어 속옷과 겉옷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대로 가면 얼마 있지 않아 브래지어와 슬립이 속옷이었던 시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찰지 모른다.

그때는 속옷룩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