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쇼크가 고비를 넘겼지만 자금시장의 돈맥경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일부 초우량 기업과 시중은행에만 돈이 몰리고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회사 및 금융기관은 아무리 금리를 높여도 자금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기업들이 체감하는 돈가뭄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금융권 진단이다.

<> 자금시장 경색 =채권시장에선 신용등급 트리플B(BBB) 이하 회사채 거래가 뚝 끊겼다.

초우량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면 회사채 유통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하루평균 회사채 거래량은 지난 4월 1조9백억원에서 현대쇼크 이후엔 반절 가까운 6천억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종금사 관계자는 "새한그룹 워크아웃과 현대쇼크 이후 기업들의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초우량 기업의 회사채와 국고채에만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며 "삼성 LG SK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아무리 금리를 높여도 회사채 발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진 것도 시중 자금사정이 호전되어서가 아니라 일부 우량채권만을 대상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채권시장이 이처럼 양극화됨에 따라 기업내용이 건실한 일부 중견기업도 회사채 차환 발행을 제대로 못해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오는 8월말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금액은 모두 11조4천억원에 달해 자금시장에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증권사 채권브로커는 "신용경색 현상이 지속될 경우 6~8월 만기가 집중 도래하는 회사채의 차환발행이 힘들 것"으로 우려했다.

대출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둔 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기업대출에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위 신용등급을 가진 대기업과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기업대출을 동결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나돈다.

회사채 시장이 마비된데다 은행마저 대출을 기피할 경우 시중의 자금난은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 기업 자금조달 초단기화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자금조달 구조가 초단기화되고 있다.

증권사에 의해 중개된 기업어음(CP) 물량 가운데 만기 15일 미만 비중은 4월의 50.6%에서 5월엔 55.4%로 상승했다.

특히 이달들어 10일까지 53.5%에 머무르던 비중이 11일 이후 열흘간 57.4% 올라 60%에 육박했다.

CP는 단기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기업이 발행하는 약속어음이다.

만기 보름 미만 CP 비중은 지난 1월 44.6%에서 2월엔 45.8%로 늘어난데 이어 3월엔 51.2%로 절반을 넘어서는 등 기업들의 초단기 급전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채권시장의 한 딜러는 "회사채 시장 마비로 기업들이 장기 자금을 끌어쓰기가 여의치 않자 초단기 CP로 급전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 자금 가운데 초단기자금 비중이 높아질수록 자금시장에 일시적인 경색현상이 일어날 경우 갑작스런 자금압박을 겪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