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5일 밝힌 "재벌개혁"을 일부에서 "재벌해체"로
해석하면서 정치권 재계 등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연일 "재벌해체가 아니다"며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부심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김태동 위원장과 이 위원회 위원인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강도높은 재벌비판을 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재벌해체라는 말이 확산되자 청와대가 이를 긴급히 부정한데 대해 과천관가
의 해석은 이렇다.

당초 재벌해체란 말을 꺼낼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재벌해체에 대해 질문하는데도 명확한 해명이 없어 혼선을 초래
했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재벌이 스스로 개혁하라는 뜻"이라며 적당이 답변
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벌해체라는 말에 대해 야당이 시비를 걸면서 색깔논쟁
으로 확산되자 성급히 막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재벌해체"라는 말은 80년대이후 사회단체나 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됐다.

이때 재벌이란 용어는 친인척중심의 경영, 내부거래, 차입을 통한 외형
확대,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사업진출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결합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 정부들어선 작년 가을 금융감독위원회가 <>업종간 독립 <>기업간 독립
<>독립기업연합체 등 3단계 대기업개혁구상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재벌해체"
라는 해석이 나왔다.

강봉균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팀은 그러나 일관되게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은 재벌해체가 아니다"며
"현재의 재벌구조를 점차 자생력 있는 독립기업 연합체 성격의 지주회사,
네트워크형 조직구조, 전략적 제휴 등의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동 위원장 등 김 대통령 주변의 이른바 "자문그룹"의 견해도 톤이
강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금감위의 재벌개혁구상과 다르지 않다.

자문그룹에는 김 위원장과 황 교수를 비롯 이선 산업연구원장,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윤원배 전 금감위 부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 자문그룹 참여 교수는 "재벌해체라는 말도 크게 틀리지 않지만 재벌과
대기업을 동일시하는 시각이 있는 상황에선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사용을 피하는 것일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두 달전부터 개혁보다는 이를 회피하는 길을 가는 재벌에 대해
울타리를 더 치는 방안을 논의해왔고 김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내기 위해
여러명이 보고서를 올렸다"고 말했다.

자문그룹은 다만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정부부처 관계자들과
다르다.

이들중 상당수는 <>재벌이 정부의 개혁정책에 저항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격을 가하고 있으며 <>반개혁 움직임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고 <>재벌체제
는 권위주의시대의 마지막 유산으로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재벌해체 논란은 지난 18일 김 대통령 주재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정덕구 산업자원부장관은 "김 위원장이 말하는 식의 "재벌
해체"는 결코 아니다"며 "상호지급보증과 출자 등에 의한 문어발식 확장을
추진해온 재벌체제를 시장에서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고치자는 것일 뿐"
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같은 재벌이라도 시장에서 수용하면 그것은 용인되는 것으로
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식관행의 해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이기호 경제수석, 김한길 정책기획수석, 박준영 대변인 등도
"지난해 재계와 약속한 5개 개혁원칙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이라고 정부입장을 밝혔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