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정부의 재벌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벌 개혁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는 재벌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김 대통령의 발언에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대통령은 이날 "시장이 재벌구조를 원하지 않으며 앞으로 재벌집단이
아니라 개별 기업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대기업 개혁의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김 대통령의 발언이 몰고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역력하다.

같은 이유에서 재벌 해체를 위한 후속 정책이 나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재벌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새로운 경영환경에서 재벌체제의 순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 재벌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킬 경우 오히려 경제 성장기반을 약화
시킬 수 있다는게 재계 지적이다.

5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5개 항목에 걸쳐 주채권은행과
약속한 내용을 반드시 지키도록 유도하는게 가장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 재벌 개혁을 압박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잇따를 경우 투자심리
를 위축시켜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투자 위축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타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우리 산업구조의 특성에 비춰 볼 때 대기업들의 투자는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7년말 외환위기가 터진 후 대기업들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과잉설비
를 털어내는 작업만 주력해 왔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설비 투자는 연기했다.

5대 그룹을 포함한 대기업들은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어느정도 마무리짓고
내년부터 핵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다각도로 검토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강화돼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경우 실질적인
투자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렇게 되면 IMF 사태이후 감소했던 연구개발(R&D) 투자의 회복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재계는 설비투자의 활력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세심한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계열사간 시너지효과 및 총수의 경영능력 사장 =정부의 재벌 정책은
그룹 총수의 전횡을 막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재계의 지적이다.

기업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한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의 대기업 정책의 기본틀은 옳지만 재벌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한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그룹은 그동안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대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 개혁의 강도가 높아지고 그룹 계열사간 연대가 느슨해지면서
총수의 역량이 빛을 보기 어렵게 됐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계열사간 부당거래나 금융계열사를 통한 편법 지원은 법적 제도적으로
근절해야지만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총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각계 반응 =전경련은 당초 약속대로 대기업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공공 및 노동 부문의 개혁도 함께 추진돼야 대기업개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축사의 내용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에 비중을
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재벌개혁은 부작용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각고의 노력도 함께 이뤄지길 희망한다"
고 밝혔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대기업 개혁 일지 ]

<> 98. 2. 6 DJ와 30대기업회장 ''기업구조조정 추진방안'' 기본원칙 합의
<> 4.14 금감위 ''금융/기업구조개혁 촉진방안'' 발표
<> 6.18 퇴출기업 명단 발표(55개사)
<> 6.19 전경련 회장단 회의, 자율적 빅딜원칙 발표
<> 9. 3 전경련, 주요기업 사업구조조정 방안 발표. 반도체 등 7개업종
<> 10.31 석유화학/항공기/철도차량 구조조정 계획 채권은행에 제출
<> 12. 7 정부-5대기업 구조조정 방안 합의
<> 12.17 5대기업 재무구조개선 약정 최종 체결

<> 99. 4.19 대우 구조혁신 방안 발표
<> 4.22 현대-LG반도체 빅딜 타결
<> 6.30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 7.19 대우 구조조정 가속화 방안 발표
<> 8.13 대우전자 해외매각, MOU 체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