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상 < OECD 대표부 자문관 >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주식회사가 사실상 개인기업처럼 운영돼 왔다.

지배주주가 경영을 좌지우지해 온 것이다.

이사회는 지배주주나 사장의 결정을 추인하는 장식물에 불과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개발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
에서도 이사회에 관한 사항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명시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사회가 경영진에 대한 감시기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기업경영을 감시하고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도록 실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이 OECD가이드라인에 명시됐다.

이에따라 그동안 이사회는 업무집행기관으로 인식돼 왔으나 앞으로는
주식회사 내부의 감독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글로벌스탠더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1870년부터 경영진으로 구성되는 경영이사회(management board)와
별도로 감독기능을 전담하는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를 두어 경영진을
감시하도록 제도화했다.

주식회사에 대한 국가의 감독을 폐지하는 대신 주주들의 감독권에 근거한
감독기관으로서 감독이사회를 설치했다.

주주 특히 대주주들이 감독이사회 구성원을 임명하고 감독이사회가
경영이사회를 감시하는 체제다.

영.미식 단일 이사회제도에서는 원래 이사회 내에 별도의 감독기관을 두지
않았다.

1백여년전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고안한 이론가들은 이사회를 직접 경영을
담당하는 업무집행기관으로 상정하였다.

주주들에게 이사를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경영성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재무제표만 공개해주면 외부주주들이 직접 경영진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경영내용이 복잡해지면서 회계정보 공시만
가지고는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됐다.

또 주식분산으로 경영진을 감시할 뜻을 가진 주주들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다.

회계처리 방법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도 한 요인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다.

1978년 뉴욕증권거래소는 모든 상장회사에 대해 사외이사로만 구성되는
감사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했다.

사외이사의 비율을 늘리도록 유도해 최근에는 사외이사와 사내이사의 비율이
평균 3대1에 달하게 됐다.

사외이사의 비율이 과반을 넘어섬에 따라 90년대 들어서는 GM, IBM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가 중심이 돼 무능한 최고경영진(CEO)을
교체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감시기능을 하는 사외이사의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이사회가 업무 집행기관
으로서 직접 경영을 담당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 되게 됐다.

기업경영은 경영진에 맡기고 이사회는 경영진을 감시하도록 해서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는 곧 미국식 이사회 제도가 독일식 이사회 제도의 기본원리를 받아들여
개선해 나감에 따라 두 제도가 유사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됐으며 감사위원회 도입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OECD에서의 관련 논의를 참고해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경영진에 대한
감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와 관행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