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과 남미에서는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의 위력을 확인시켜 주는 뉴스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소로스 회장이 은행을 인수하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금융계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했다는 발표였다.

서울에서는 소로스가 지난 1월말 인수한 서울증권의 사장에 자신이 직접
발굴한 재미교포 토머스 강(한국명 강찬수)을 앉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 사장의 연봉이 3백만달러나 된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날 브라질에서는 소로스의 1백20억달러짜리 투자펀드를 운영해오던
아르미니우 프라가가 중앙은행 신임 총재에 지명됐다.

이를 두고 브라질에서는 "소로스 회장이 브라질 금융시장을 접수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소로스의 손길은 곧바로 아르헨티나로 이어졌다.

소로스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투자펀드를 통해 아르헨티나 국영은행인
내셔널 모기지 은행의 지분을 30% 가까이 인수했다.

한물 갔다고 폄하당하던 어제의 소로스가 아님을 재삼 확인시켜준 한주간
이었다.

뒤에서 시장을 주무르던 헤지펀드가 이제 제도권의 전면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헤지펀드는 아시아에서 시작돼 전세계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장본인 중의 하나다.

금융시장이 취약한 나라를 쫓아다니며 유린하는 "하이에나"로 비난받아
왔다.

태국과 한국이 그랬고 브라질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과 말레이시아는 공개적으로 헤지펀드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선진 각국에서 단기자금 이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바로
헤지펀드의 발목을 잡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비난들은 부질없는 "반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달러"이고, 그 달러는 "월가"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새로운 질서가 현실일 뿐이다.

싫든 좋든 증권사와 은행이 차례로 그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중앙은행 총재자리까지도
"가해자"에게 맡기는 상황이다.

새로운 질서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국제금융시장에 적용되는 법칙은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라는 현실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투기"는 죄악이고 "투자"는 괜찮다는 어설픈 논리는 벗어 던질 순간이다.

< 김수찬 국제부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