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는 같아도 의미는 정반대"

지난 11월중 일본과 미국의 실업률은 똑같이 4.4%를 기록했다.

그러나 양국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미국은 이를 유례없는 호황의 지표로 받아들이는 반면 일본은 사상최악의
취업난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특히 일본내에서는 "종신고용제 한계론"이 비등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완전고용 체제를 지탱해온 종신고용제가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과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종신고용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오히려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역효과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일본기업들은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리해고"라는 단어를 금기시하고 있다.

일례로 히노 자동차사는 최근 트럭 40% 감산계획과 관련해 한 신문이
"정리해고가 예상된다"고 보도하자 이를 즉각 부인하는 성명을 냈다.

이처럼 유휴인력이 발생해도 이를 감싸안는 것이 일본식 종신고용의
전통이다.

마쓰다 자동차는 조업단축으로 발생한 유휴인력을 영업직으로 전환시켰다.

또 히타치 조선은 조선경기 불황때 양조회사를 세웠고 고베철강은
경비용역회사를 설립해 유휴인력을 흡수했다.

어떤 환경에서건 "가족"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종신고용은 기업별노조 연공서열과 함께 소위 "삼종의 신기"라고도
불렸던 일본식 경영의 요체였다.

그러나 이제 이같은 종신고용 풍토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희망퇴직"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광학기기업체인 호야사의 경우 희망퇴직제를 통해 직원 3분의1을 정리했다.

말로는 "희망퇴직"이라고 하지만 근로자들이 진짜로 퇴직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퇴직하지 않은 직원들의 급여는 30%씩 삭감됐다.

퇴직을 강요하는 또하나의 방법은 떠밀기다.

사무직 근로자를 하루아침에 목공실로 발령내는 식이다.

종신고용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종신고용제에서는 근로자들이 한 직종에만 안주하게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실적이 좋지 않을때 감원을 못하는 회사는 역으로 상황이 좋아져도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경기가 좋을 때도 일본 경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있어
미국보다 뒤졌다.

경기가 비교적 괜찮았던 지난 80년대를 돌이켜보면 일본의 일자리는
연 1% 증가에 그친 반면 미국은 1.7%에 달했다.

종신고용은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월말 현재 대졸예정자 가운데 67.5%만이 일자리를 구했다.

통상 90% 이상이 직장을 잡았던 과거와 비교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때문에 일본언론들은 "종신고용이 대졸자들을 빙하시대로 몰아넣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