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의 사업구조조정(빅딜) 대상이나 퇴출계열사의 빚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채권금융기관과 기업이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시장해결론"을 펴면서도 관행상 그룹이나 사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금감위가 독립기업화를 통해 자기책임원칙을 확립시킨다고
하면서 특정계열사의 빚을 다른 계열사가 떠안도록 하는 것은 모순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최근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를 명예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예로운 해결"은 바로 삼성자동차가 진 빚을 삼성그룹이 대부분 또는
모두 떠안으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 사업을 구조조정을 통해 처리하면서 빚을 거래기업이나
채권금융기관이 떠안도록 하는 것은 ''불명예''란 얘기다.

금감위는 처음부터 채권금융기관에게 부담이 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에는 부정적이었다.

이 위원장도 지난 12일 "생산제품의 경쟁력이 있어 미래 전망은 밝지만
빚이 너무 많고 차입구조도 단기위주로 돼 있는 기업에 부채비율을 낮춰
국제경쟁력을 갖춰 주자는 것이 워크아웃의 취지"라며 "삼성자동차가 과연
여기에 합당한 기업이냐"고 반문했다.

5대그룹의 빚부담을 채권금융기관에 전가해선 안된다는 논리의 근거는
민법상의 "표현대리".

부실계열사의 기채행위가 그 기업보다는 그룹전체나 사주를 보고 이뤄진
만큼 책임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관행과 법률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이는 궁극적으로 시장
에서 이해당사자들간에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금감위는 그러나 그룹이미지나 여론의 부담 때문에 빚을 채권금융기관이나
인수기업에 떠넘기는 "불명예"를 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처리방식은 얼핏보면 모든 기업을 독립기업으로 만들어 자기
책임 원칙아래 사업을 하도록 하겠다는 금감위의 그룹재편구상과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이에대해 금감위관계자는 "부실계열사의 빚을 그룹및 사주가 부담하는 것은
책임의 소재를 원위치로 돌리는 과도기적 과정, 즉 정상화 과정으로 이해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