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의 친인척 예금계좌를 불법추적하는데 은행감독원 직원을
수시로 동원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실명제와 예금자 비밀보호를 감독해야 할 당국이 오히려 계좌조사에
동원되었다는 데서 어떤 형태건 책임 문제도 따를 것으로 보인다.

20일 검찰과 은감원에 따르면 은감원 검사6국소속 검사역 10여명은 지난해
8,9월 청와대 비자금 추적반에 파견돼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 친인척
계좌를 추적조사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은감원의 금융실명제 위반 여부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제4조에는 수사의
목적으로 법원의 영장을 받은 검찰이나 탈세혐의를 잡은 국세청장, 금융기관
에 대한 감독검사에 필요한 재경원장관 은행감독원장 증권감독원장 보험감독
원장은 예금계좌를 추적할 수 있게 돼 있다.

이것으로만 미뤄보면 은감원장이 계좌를 추적하는 것은 전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은감원 직원들의 비자금계좌 추적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검사업무와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또 정식 수사에 의한 것도 아니어서 이는 명백한 금융실명제 위반이라는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은감원도 실명제 위반에 관한 한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청와대나 안기부 등 정보기관에서 검사역들을 파견해달라고 요구하면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검사역들이 파견나가 수행한 일에
대해선 담당국장이나 부원장 원장에게 보고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므로
은감원이 조직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의 시각은 좀 다르다.

관련 법규를 앞장서 지켜야 할 감독당국이 위법사실임을 알면서도
실명제를 위반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회재경위의 은감원에 대한 국정감사때 당시 야당의원들이
검사6국 직원들의 파견일지를 요구했음에도 이수휴 은감원장이 이를
끈질기게 거부했던 점에 미뤄 이미 이원장 등 은감원 간부들이 비자금관련
계좌추적사실과 실명제 위반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금융계에선 이번일로 금융계에 엉뚱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