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 지난 10일 서울에 도착한 김경호씨(62) 일가를 비롯한
17명은 14일 처음으로 서울시내 나들이에 나서 자유화 풍요를 만끽했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남산타워 롯데백화점 남대문시장 등
3곳을 차례로 둘러보며 "놀랍습니다" "황홀합네다"를 연발했다.

김씨 일행이 맨먼저 도착한 곳은 남산타워.

이들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엔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나 시민들이
박수를 치면서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라고 반갑게 말을 건네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김씨는 남산타워에 오른 뒤 한국전쟁때까지 유년시절을 보냈던
이태원쪽을 내려다보면서 "저기가 이태원이야" "너무 많이 변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의 차녀 명실씨(34)는 "서울에는 판자집만 있다고 들었고
텔레비젼에서도 판자촌에 사는 인민들의 모습만 보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씨 일행은 중구 남산동에 있는 한정식집 연정가든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중 "북한에서 풀죽이나 강냉이죽으로 연명했다"며 "불고기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소화가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롯데백화점과 남대문시장에서는 산더미같이 쌓인 물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명실씨는 물건을 만져보며 "이것들이 모두 한국에서 만든 것이냐"고
물었고 김씨의 차남 성철씨(26)는 "북한에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놀랍다.
이제야 사선을 넘었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 일행은 가운데 5명의 어린이들은 가는곳마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박봄양(6)은 남산타워 기념품가게에서 장남감을 시달라고 졸라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들은 롯데백화점 6층 완구매장에 도착하자 탄성을 지르면서
장난감총을 쏴보고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몹시 갖고 싶어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