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하라"

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이홍구대표 강삼재
사무총장 등 주요당직자와 김윤환 이회창 최형우 이한동 박찬종고문 등
상임고문단과 오찬을 같이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북한공비의 간첩선침투사건및 북한정세, 중남미순방결과,
경제난 등을 설명하고 "이런때일수록 당은 이홍구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모든 일에 승리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
고 당부했다고 김철대변인이 전했다.

김대변인은 브리핑이 끝난뒤 "대권문제나 김대통령부재중 상임고문들의
언동에 관한 다른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대변인은 또 "김대통령이 주로 말을 하고 상임고문들은 전혀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 이날 회동분위기가 다소 무거웠음을 시사했다.

김대통령과 여권내 대권주자들로 불리는 상임고문단의 회동은 중남미순방
이후 처음이다.

또 지난 7월 상임고문단 임명이후 한차례의 개별적접촉외에 집단회동으로는
"독불장군"경고 이후 두번째다.

특히 김대통령의 해외순방중 터져나온 김윤환 전대표의 이른바 "영남
배제론"으로 불거진 당내 대권논의가 일부 주자들의 "패거리 정치 청산론"
"50대 한극세대 역할론" "영남 통합론" 등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등
당내 "불협화음"을 야기시켰다는 점에서 이날 회동이 관심을 끌었다.

당연히 김대통령의 강력한 "2차경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와달리
대권후보군을 향한 "직격탄"은 없었다.

김대통령은 대권후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북한정권에 대해서만 "직격탄"을 쏘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김대통령이 인급한 짧막한 "화합과 결속"이라는 말속에
대권후보들을 겨냥한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이대표를 중심으로"라는부분에 대권후보들은 적잖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권주자간 미묘한 역학관계를 놓고 볼때 김대통령이 이대표에게 다시한번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당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하라"는 말이 일면 당연하고 의례적인 것처럼
들릴수도 있으나 대권후보들로 불리는 상임고문단 앞에서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김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의미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김대통령이 북한 무장간첩의 잠수함침투사건과 선거부정및
제도개선 등을 둘러싼 여야간 대립정국, 악화일로의 경제난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위기상황에서 대권논의로 당내분열과 파벌을 조장하지 말고 자중하라"
는 우회적 경고의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대통령이 이날 오찬회동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대권후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간첩사건과 중남미순방결과 설명에 할애한 점이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알만한 사람"들에게 면전에서 "듣기싫은" 소리를 하기보다는 "알아서
분위기 파악하라"는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다.

회동이 다소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는 것도 김대통령이 대권후보군
에게 화가 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될수 있다.

일단 김대통령의 이날 언급의 속뜻이 당내화합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표에게 무게를 둔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또 김대통령이 사용한 "승리"라는 말에도 함축적 의미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승리의 대상에는 북한정권, 야당, 내년 대선 등 많은 것이 포함될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만을 놓고 볼때 승리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대권을 놓고
당내 분열이 일어나면 정권재창출에 실패할수 있다는 대권주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로 해석할수 있기 때문이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