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신화.비자금파문등으로 곡절을 겪어온 조내벽전회장이 결국 자신이
일궈온 기업들을 전부 제3자에 넘기게 됐다.

장기간 지속돼온 건설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늘어나는데다 금융비용부담이
과다해 도저히 경영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라이프주택건설은 87년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된 뒤 주로 공공공사 중심
으로 사업을 전개해 왔으나 악화된 건설경기를 반영, 최근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는 얘기다.

더구나 그동안 추진해왔던 보유부동산의 매각도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싯가 3천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조선호텔및 보문컨트리클럽
등은 94년에만 6차례에 걸쳐 공개매각이 추진됐으나 번번히 유찰됐다.

그사이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라이프는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에 2천7백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을
비롯, 제2금융권에도 수백억원의 빚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빚으로 빚을 갚아야하는 상황이 지속된 것.

<>.라이프의 제3자인수 결정에는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의 압력이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경영마저도 어려운 마당에 더이상 라이프란 골칫덩어리에 얽매여 있을
수 만은 없다는게 서울은행의 입장.

은행측은 부도후 경매처분이란 특단의 조치를 배수진으로 치고 있다.

즉 경영권에 연연해 제3자인수에 미온적일 경우 과감하게 부도 처리,
자금회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은행측의 한 관계자는 "라이프를 제3자인수시키는 것과 관련해 조씨
형제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진행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하고
"부도가 나더라도 건영처럼 법정관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전회장도 은행의 이같은 방침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황해도 출신으로 경기고 고려대를 나온 조전회장은 지난62년 한선기업
이라는 소규모 섬유.의류판매업체로 재계에 몸담았다.

38세의 나이로 75년 라이프주택개발을 설립한 조전회장은 때마침 불어닥친
해외건설 경기및 국내 아파트 건설붐을 업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 불과
수년만에 보험사 증권사 호텔등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그룹으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무섭게 성장해 가던 라이프주택개발도 80년대초반들어 시작된 중동
건설 경기퇴조와 석유파동앞에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은행빚을 못갚을 정도로 해외건설에서 손해를 보게 되자 서울은행은 84년
부터 자금관리단을 파견, 자금 입.출금관리에 들어갔다.

은행의 종용으로 보험사및 증권사등의 자회사도 매각했으나 한번 꼬인
자금사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93년에는 재무구조 개선미흡및 비자금조성파문등에 얽혀 조전회장이 전격
퇴진했다.

조전회장은 그러나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회사의 중요사안을 챙기는등
경영의 고삐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