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혜숙씨(51)가 네번째 장편 "쓰루가의 들꽃" (찬섬 간)을
펴냈다.

이 소설은 일본 핵발전소 건설현장에 위장취업한 한국인 젊은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군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일본의 핵무장 야욕을
고발하고 있다.

무대는 일본의 항구도시 쓰루가.

학생운동으로 쫓기던 주인공 상철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용노동자로
고달픈 나날을 보내다가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 막일꾼으로 고용된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기밀에 속하는만큼 외국인 취업이 엄격하게
규제됐지만 하청업체의 예산절감과 공사감독의 욕심이 결합돼 싼 인건비의
한국인들이 투입된 것.

시기적으로는 80년대중.후반 일본이 프랑스에서 대량의 플루토늄을
들여오던 때와 맞물린다.

엄청난 핵저장고의 실체를 파악한 상철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핵개발
의도를 분쇄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작가는 주인공 상철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되 그의 시야에 포착된 재일
한국인노동자들의 애환에도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 부장승진을 앞두고 떨려난 회사간부, 학업을
중단한 대학생등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몸부림과 비만 오면 공친다며
조마조마해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상철이 한국에서 사랑했던 여인과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은 "멀고도 가까운" 양국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철의 거사를 알고 묵시적으로 도와주는 일본노인 오무라의 존재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전주의자인 그는 전통있는 무사집안 출신으로 2차대전때
조선인징용자를 처단한 "불행한 과거"를 안고 있다.

"일본은 미래가 없다"며 한탄하던 그는 상철의 시도가 실패한 걸 알자
목숨을 끊어 과거를 사죄한다.

작가 안씨는 이 작품을 위해 3년간 쓰루가 원자로현장을 오가며 "가장
힘들고 눈물겨운 열정"을 쏟았다고 털어놓았다.

"89년 자료수집여행중 우연히 시골의 한 식당에서 이 얘기를 접했어요.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큰 힘이 됐죠. 일본 당국의 제재가
심해 현지취재에 무척 애를 먹었지요"

평양 태생으로 숙명여대를 졸업한 안씨는 월남전을 다룬 장편
"고엽1,2"와 "역마살 낀 여자" "해바라기" 등을 냈다.

지난해 발간한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가 창작집으로는 유례가
드문 7만권이상 팔려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