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인 TSB를 합병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런던 금융관계자들은
60년대에 거세게 불었던 거대은행간의 합병붐이 재연될 신호탄으로 받아
들였다.
그당시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가 11개 대형은행을 현 "빅4"체제로
유도한 사실을 되새긴후 런던금융가는 또한차례 합병열기에 휩쓸릴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드-TSB가 탄생되면 자산규모가 2천억달러로 영국 3대은행으로 발돋움
하게 되고 이는 여타 대형은행을 자극하게 될것이란 얘기다.
이날 합병소식이 전해지자 양사의 주가가 급등한것은 물론 그동안 합병
대상으로 거론돼온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뱅크 오브 스코틀랜드, 애비
내셔널 스탠다드 차터드등 주요은행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인 것도 이를
반영한 결과였다.
유럽금융가의 합병붐은 지난 3월 영국 최고의 금융회사인 베어링은행이
파산한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베어링의 도산은 파생금융상품거래의 실패못지않게 국제금융시장에서 생존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란 시각이 강한데 따른 반응이었다.
여기에다 케미컬뱅킹과 체이스맨해튼이 합병, 미국 최대은행으로 부상하는
등 경쟁상대국인 미국과 일본은행들이 몸집키우기 작업에 적극 나서자 합병
을 통한 외형확장은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져왔다.
네덜란드 ING사가 베어링을 인수한후 독일의 드레스너은행이 클라인보르트
벤슨을 합병했으며 도이치은행이 투자은행으로 변신하기 위해 런던금융가를
맴돌며 "먹이사냥"에 나선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금융가는 앞으로 일어날 금융회사간 합병은 그 규모가 보다 대형화되고
건수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합병붐은 금융기관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미디어 제약에서 전자 식품등 다양한 제조업종의 기업들이 루머를 타고
매물로 흘러나오며 유럽기업들은 타의든 자의든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합병대상의 국적개념도 사라졌으며 몇억달러 짜리 매물은 이제 일반화됐다.
주력사업 분야는 한마디로 "클수록 좋다"는 인식이 열병처럼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국 최대제약업체인 글락소가 지난 3월 동종업체인 웰컴사를 인수한 것도
그 예이다.
글락소가 지불한 액수는 제약업체간 합병사상 최대규모인 1백50억달러
상당.
이로써 글락소는 미국 머크를 제치고 연간 매출액이 1백2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제약업체로 뛰어 올랐다.
막대한 연구및 판매비부담등 제약업계가 안고있는 특성을 감안, 글락소는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는 생존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영국의 캐드베리 슈에프스도 같은 시점에 미국 닥터페프, 세븐업을 16억
달러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청량음료시장에서 미국의 코카및 펩시의 아성에 도전, 명실공히
국제적 기업으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이밖에 스웨덴의 SCA사는 7억6천만달러를 지불하고 독일 PWA사의 지분
60%를 인수, 유럽 최대 목재업체로 부상했으며 스웨덴의 파마시아와 미국의
업존이 살림을 합쳐 세계 랭킹 10위권의 대규모 제약업체로 올라서는등
그예는 수없이 많다.
이를 틈타 창업사를 육성, 이를 대기업에 매각하는 신종사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영국인 봅 존스씨의 경우 지난 5월 소닉스 커뮤니케이션스를 미국 3컴에
매각하는등 합병붐이 일때마다 그동안 키워온 창업회사를 매각, 지금까지
8천7백만달러를 챙기기도 했다.
"글락소등 일부 업체가 합병과 관련해 지불한 수수료는 지난 한해동안
런던증시가 거래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입을 능가할 정도"란 어퀴지션 먼스리
의 필립 힐리편집장의 지적이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기업의 국적개념이 사라지는 세계화시대에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자연히 합병은 세계기업의 최대 생존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경쟁력약화로 세계 경제전쟁에서 뒷전으로 점차 밀려온 유럽기업이
합병을 통한 주력사업의 확장에 보다 적극성을 띠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