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께 여의도 유공 본사 정문에서는 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어깨띠를 두른 한무리의 남녀들이 90도로 정중하게 허리를 꺾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유세원 역할을 한 것은 중앙 3개 투신사의 직원들, 어깨띠에 적힌 내용은
자신들의 회사에서 취급하는 개인연금 상품이 우수함을 알리는 것이었고
유권자는 유공 직원들.

유공측이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직원들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유공직원은 투신사의 잠재 고객이 됐고 이에따라 투신사들의 적극적인 유치
작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투신입장에서 볼때 개인연금 저축 가입자들은 놓칠 수 없는 고객층.

89년 12.12조치때 대규모로 떠 안은 주식때문에 평가손이 적지 않아 경영
정상화가 어려웠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때문에 개인연금이라는 신상품은 매우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대상.

우선 다른 수익증권과는 달리 적립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자금이 유입되기
때문에 환매라든가 해지사태를 우려할 필요없는 안정적인 상품이다.

또 운용보수를 받아 적지 않은 이익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발매 1년째, 이처럼 활발하게 고객 확보전략을 전개함에 따라 투신사들의
개인연금 수탁고는 부쩍 늘었다.

유치작전의 성적표는 수탁고에서 나타난다.

투신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현재 한국 대한 국민등 중앙3투신과 한남
동양 제일 중앙 한일등 지방 5투신의 개인연금 저축고는 7,579억원으로
집계돼 1조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계좌수는 모두 36만1,520개로 1계좌당 수탁고는 209만6,000원.

서울소재 투신사와 지방투신사는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앙 3투신(계좌당 219만6,000원 가량)이 지방 5투신(계좌당 116만9,000원
가량)보다 수탁고가 훨씬 높다.

외형면에서도 중앙투신의 신장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말과 비교할 때 중앙3투신의 수탁고는 82.4%가 증가했지만 지방
투신사들의 경우 9.3%가 늘어나는데 그쳤다.

투신사의 개인연금 상품들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식형과 공사채형의 구성비가 크게 바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주식형 상품은 전체 개인연금 저축의 89.2%를 차지한데 비해
공사채형은 10.8%에 불과했다.

하지만 13일 현재의 수탁고를 분석해 보면 주식형은 50.3%로 비중이 대폭
낮아졌고 반면 공사채형은 49.7%로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올들어 증시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주식형의 수익률
이 하락, 투자자들의 성향이 안정적인 공사채형을 선호하는 쪽으로 전환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투신사들의 개인연금 수탁고 증가폭이 미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주식형의 비중이 아직 77.6%에 달할 정도로 증시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투자수요를 유발시키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증시 약세로 지난 1년동안 주식형은 공사채형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수익증권과는 달리 개인연금 상품은 수익률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월납이나 분기납등 적립식으로 납입되는데다가 상품이 개방형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납입시점이 제각각이고 상품의 기준가마저 다 다르기 때문에 대표성을 갖는
산술평균 수익률을 도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산출잣대로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다를 수밖에
없고 투신사들도 자기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산출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발매당시의 기준가격과 지난 14일의 기준가격을 대비해 수익률을 산출해
보면 공사채형의 수익률이 단연 높다.

올들어 설정된 일부 공사채형의 경우 최근에야 채권편입이 끝남에 따라
수익률은 낮지만 조만간 목표수익률인 14.5%정도는 달성할 것으로 투신사들
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식형은 대부분 수익률이 저조하다.

주식형 상품들은 특히 투자자들이 언제 가입했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마이너스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투신사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전에 발매된 한국 1.2.3호, 대한 1.2호, 국민 1.2호등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가가 상승기조를 보였던 지난해 11월께까지 높은 수익률을 올렸고
따라서 주가가 정점이던 11월을 전후해서 이 상품에 가입했다면 같은 규모의
납입액으로 사들일 수 있는 수익증권 계좌수는 적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가입이후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에 기준가격 또한 낮아져
손실폭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일단 1년간의 운용결과에 비춰볼 때 단기적으로는 공사채형이 판정승을
거뒀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주식형이 유리하다고 투신관계자들은 주장
하고 있다.

개인연금은 저축기간이 최소 10년 이상인 장기상품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외에도 인플레이션에 의한 실질가치 하락을 얼마만큼 보전해 줄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주식형의 투자대상은 우량기업의 상장주식들.

우리경제가 발전할수록 기업들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며 선물등
주식투자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다양한 투자기법이 도입됨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그렇지만 금리는 우리경제의 선진화가 진전될수록 한자릿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등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주식형이 유리하다는게
투신업계의 진단이다.

참고로 지난 92년 미국 연금의 투자신탁별 점유비는 주식형이 49.9%로 가장
높고 공사채형이 31.8%, 단기유동성에 투자하는 MMF가 18.3%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주식형 상품에는 안전판도 마련돼 있다.

현재 신탁안정 조정금이 적립되고 있는데 지급된 연금액의 수익률이 저축
기간동안 은행의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에 미달하는 경우 조정금 범위내에서
미달금을 보전해 준다.

또 10년이상 저축후에는 공사채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의 저축기간에 따라서는 공사채형이 유리한 경우도 있다.

가령 50세인 사람의 경우 만기가 55세이므로 5년만 불입하면 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단기 안정수익을 겨냥하고 공사채형을 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 박기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