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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경제관료] (70.끝) 에필로그..관, 틀/환경 바뀌어야

"정부는 필요악인가" "한국의 경제관료" 데스크를 보면서 단 한번도
뇌리를 떠나지 않은 화두였다.

복지부동으로 대변되는 보신주의, 예산.조직확대를 통한 자기번식
본능과 부처 할거주의, 상.하 동료들간에 번져가기만 하는 불신풍조,
사정.개혁.개방속에서도 기득권을 붙잡으려는 수구적 행동양태, 정에
밟히면서 민에 군림하는 정존민비의 사고방식 등등-.

일선기자들이 취재해 온 이같은 관료집단의 자기모순을 접할 때는 특히
그러했다.

경제관료들의 존립논거를 제공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보다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에 대한 경계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외신은 구.미.일등 각국의 세찬 행정개혁 작업을 쉬지않고
전해왔다.

차제에 상당수 정부부처를 해체하는 것이 더 낫지않겠느냐는 생각도
머리를 스쳐갔다.

"관료무용론"을 내세우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목적하는 바는 분명했다.

관료부정의 측면에 서서는 안된다는 게 전제였다.

그 보다는 나라안팎의 상황변화에 대응하는 우리 경제관료들의 역할
재정립을 논의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의 자리매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따져보고자
했다.

따라서 시리즈는 개인적 실패(individual failure)를 다루되 특정
개인을 겨냥해 비판하지는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관료집단 전반, 또는 이 집단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메커니즘의 구조적
실패(systematical failure)에 촛점을 맞추었다.

쉽게 말하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정부시스템
을 문제삼았다는 얘기다.

구조적 실패야말로 관료들 개개인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드는 본질적
문제라는 시각에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같은 시각은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대다수 경제관료들은 그래도 책임감있고 능력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물을 흐려놓는 사람들이 있긴 했어도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소수파 조차도 그들의 창의성을 무시하고 정열을 소진시키는 낡은
시스템과 외부환경이 배태한 희생자라는 점도 확인했다.

따라서 관료의 역할재정립과 관의 새로운 자리매김 작업은 이 두가지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조직내부의 틀과 시스템을 다시 짜는 것이다.

짜는 방법은 정부에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불어넣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기업가"란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가 내린 정의 그대로다.

"기업가는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과 수익이 낮은 분야에서 높은 분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 정의를 공공부문에 적용하려면 먼저 조직 내부의 시스템이 관료들
개개인의 기업가적 자질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고쳐져야 한다.

구체적으론 유인체계의 마련이 시급하다.

일선 행정기관에, 조직내부적으론 실무간부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이 가도록 말이다.

그래서 행정의 현장성과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보수와 인사.승진체계에서 연공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하는 인센티브제
도입도 절실하다.

조직의 시스템을 이렇게 바꾸면 관료집단 전체도 얼마든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혁신이 관료집단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또 하나는 관료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외부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관료 외부환경은 크게 정과 민으로 나눌 수 있다. 정치권에선 무엇
보다도 저질스러움이 없어져야 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 정당은 정책입안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 정치의
장에서 경제논리가 먹혀들어가지 않는 건 그렇다고 치자.

어느날 발표된 정책이 갑자기 철회되고 타협과 절충의 대상이 되는
건 군사독재정권의 구습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정치권은 옛날 그대로이면서 관만, 관료만 바뀌라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일반 국민들의 의식도 관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무조건 관을 매도한다.

관의 감독소홀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일방적으로 뒤집어 씌우기 일쑤다.
좋게 말하면 관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책임
회피다.

이 모두가 개발연대의 관의존적 사고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료의존 행태가 행정규제 당위성의 확대재생산을 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정책을 만들게 한다.

관으로 하여금 일정한 질서의 틀을 만들고 공정경쟁의 감시자역할에만
충실하는 본연의 기능에서 "월권"하게 하는 근인이다.

그 결과로 관은 물론 나라전체의 창의성이 살아나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제관료 사회는 누가 뭐라 해도 우수한 두뇌집단이다.

관료집단을 그 "우수한 개인"에 걸맞는 "우수한 조직"으로 바꾸는
작업은 관료들 스스로는 물론 사회구성원 전체의 몫이다.

아무리 세계화가 된다 하더라도 정부의 문호를 개방할 수 없고
공무원을 수입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정부의 존재를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으로
만들 책무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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