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코오롱 구미공장에 파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던 지난 7월8일,
"현장경영"을 위해 이곳에 와있던 이웅렬그룹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근로자
들의 요구를 전폭 수용, 임금을 평균 21%나 인상키로함으로써 파업은 29
시간만에 끝났다.

이부회장의 이같은 결단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임금안정에 앞장서고있는 경총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부친 이동찬회장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재계의 집중적인 비난까지 감수해야하는 어려운 결정
이었다.

그러나 이부회장은 근로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스스로 반성한 결과 우리 근로자들이 최고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제는 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최고로 대우해주겠다.

그러나 최고로 대우받는 만큼 최고의 자질과 최고의 생산성을 함께 요구
한다.

그것에 역행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것이다" 이것은 "대변화"
의 시작이었다.

그후 1주일이 지난 7월15일 이부회장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사의를
표명한 하기주사장의 뒤를 이어 (주)코오롱의 대표이사사장에 취임했다.

그룹의 경영대권승계에 대비,39세의 젊은 나이로 주력기업의 경영을 직접
맡고 나선 것이다.

신임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경영방침의 변화를 천명하고 곧바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개혁의 골자는 지금까지의 안정과 내실위주의 2등주의기업문화를 성장과
도전 중심의 1등주의문화로 바꾸겠다는 것. 회사 전반에 과거의 "가만히
앉아서 장사하던 "체질이 만연돼있어 기업은 2류로 전락했으며 이러한
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없이 1류기업으로의 도약은 어렵다는 것이 이사장의
진단이다.

이사장은 우선 자신의 경영철학인 "1등주의""선점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벤치마킹 목표관리 임원업적평가등의 내용을 담은 21세기 비전을
선포한데 이어 전사경영혁신을 위한 RACE운동에 들어갔다.

이 운동은 대규모 투자 적자사업포기,분권화된 자율경영등을 통한 사업
구조재구축과 인사제도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사장은 주례 임원회의 형식도 바꿨다.

종전 사업본부장들이 돌아가며 자기부문의 실적및 계획만 보고하고 사장은
일방적으로 지시만하던 "맥빠진" 회의가 아니라 주요 프로젝트나 경영에
영향을 줄 현안들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되도록 한것이다.

그리고 임원들의 의식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기 것만 챙기는 복지부동의 자세를 일소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는 꼴찌가 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했다.

젊은 오너사장이 일으키고 있는 전례없었던 개혁의 돌풍에 임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요즘 코오롱에 나타나고 있는 이런 변화의 바람은 이사장의 과단성있고
진취적이다 못해 성급한 일면까지 보이는 성격과 경영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코오롱의 임원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사장 부사장 전무가 각 1명씩에 8명의 상무가 떠받치는 형태이다.

이같은 구조는 (주)코오롱이 그룹의 모기업으로서 임원사관학교의 역할을
해온데 따른 것이다.

(주)코오롱의 전무급에 오른 뒤에는 다른 계열사의 사장으로 나가는
현상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경영은 상무급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거의 모든 임원이 공채출신인 점도 특이하다.

오너사장을 제외하고는 상무급이상 임원모두가 60년대 또는 70년대초 입사
해 한자리를 지킨 코오롱맨들이다.

사풍이 짙은 보수성으로 흐른데는 이같은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임원 대부분이 영남출신이다.

부사장에서 상무까지의 10명가운데 비영남출신은 조용장전무(인천) 1명
뿐이다.

대구에서 창업,그곳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사업장도 대부분 영남에 몰려
있는 탓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5년전만해도 코오롱의 임원중 경북고-서울상대 또는 서울공대 라인이 아닌
사람은 거의 찾아볼수 없었으나 지금은 이사급으로만 내려가도 이른바 TK
출신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수권부사장은 코오롱의 대부이자 산 역사로 손꼽힌다.

코오롱의 장학생 출신으로 61년 입사한 이래 85년 필름사업부문장을 맡을
때까지 생산현장을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섬유기술의 대가이다.

대구 구미에 있던 공장 구석구석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곳이 없다.

성서공장을 맡고 있는 조용장전무는 터프한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다.

성서공장 1백20명종업원의 얼굴 이름은 물론 그 가족들의 얼굴도 다 알
정도이다.

그러나 강인한 추진력만큼은 사내에서 첫손 꼽히는 인물로 65년 입사이래
기술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8명의 상무진은 각 사업부문을 책임지면서 경력및 기능별로 역할을 분담
하고 있다.

경제학과 출신인 유명렬상무는 탁월한 영어구사능력을 바탕으로 1년중 3
분의 2를 해외에서 생활하는 해외영업통이고 전기공학전공인 서영웅상무는
자동화전문가로 지난 3월 준공된 최첨단의 김천CIM(컴퓨터통합생산)무인
자동화 공장 건설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조정호상무는 기술부문 총책임자로 주요 플랜트건설 입안및 화섬부문
차별화 소재개발을 주도하는 섬유 신제품개발 전문가이다.

상무진가운데 특이한 인물은 장두환상무와 지난7월 구미공장장으로 발령
받은 김주성상무.장상무는 이동찬회장을 20년가까이 측근에서 보필한 사람
으로 차장시절 기획조정실 창설을 주도했다.

인사통으로 레저 스포츠사업기획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 그룹의 레저
산업 진출에 앞장섰다.

우정힐즈골프장건설을 직접 맡아 성공적으로 완공했으면서도 본인은
자신이 만든 골프장개장이후 처음 골프를 배웠다.

김상무는 말단사원시절부터 이동찬회장의 수행비서생활을 10년이상해와
회장의 의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물이다.

지난해까지 그룹기획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신인사제도의 발판을 닦았으며
주관이 강해 임원들의 보수적인 일반정서와는 다른 돌출된 일면을 보이고
있으나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핵심을 짚어내는데는 귀재로 평가받고 있다.

< 추창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