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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 사망이후 북한을 이끌어갈 권력계층은 누구인가?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일인장기집권체제였던 북한이 김일성주석사망으로
권력구조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내의 이른바 "전문기술
엘리트" 계층에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히 북한의 "제3세대 테크노크라트"라 불리는 이들 기술엘리트계층은
현재 북한의 권력핵심부인 노동당의 정치국과 비서국, 정무원등 당과 행정
조직의요직에 폭넓게 포진돼 있다.

특히 김일성주석 사망이후 아들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점차 가시회되고
있음에 따라 권력내부에서 기술관료출신 신엘리트집단의 입지와 역할이
보다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신정권"이 초기 짧은 기간에는 김일성 혁명노선을 유지하면서
권위주의적 1인 결정과정을 답습할 것이나 결국에는 실용주의적 정책노선
으로의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학계등 전문가들의 분석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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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향 <<<

제3세대 테크노크라트의 성향 북한의 권력계층은 크게 나눠 세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1910년이후 출생으로 김일성과 함께 만주등지에서 항일빨치산운동을
전개했던 오진우 서철 박영순 최광등으로 혁명1세대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1960-70년대까지 혁명주체세력이라는 "영광스런" 칭호와 함께
당과 군을 장악하며 김일성 일인체제형성의 산파역할을 해냈다.

그다음의 2세대는 주로 50-60세의 연령층들로 해방후 6.25전쟁등을 거치며
60년대이후 북한체제내부의 안정을 주도한 계층들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현재 노동당과 정무원과 군등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이근모 박성철 이종옥 김영남 연형묵 강성산 등이다.

이들은 완전히 체제동화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들로 현재까지 실질적으로
북한사회를 이끌고 있는 주역들이다.

그러나 2세대들은 60-70년대 동원체제와 북한내부의 권력충원과정에서
제일차적으로 요구되는 당성외에 경제등 전문분야에서 실부경험을 부분적
으로 쌓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70년대들어 외교 경제등의 분야에 전문가들이 대거 등용되기 시작,
전문기술 당.관료들이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직 당과 정무원에서 직위는 높지 않지만 협동조합출신이나
노동자출신관료들에 비해 조직하부로 내려갈수록 저변이 상당히 넓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체제동화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1,2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덜하며 국내외의 사정에도 비교적 밝은 이론가들이 많다.

대부분이 대학졸업이상의 고학력인 이들은 주로 구소련과 중국, 동구권
등지의 해외유학파와, 엘리트양성의 중추기관인 김일성대학과 만경대학원을
졸업한 국내파로 구분되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문성과 정보분석능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제3차당대회때(1954년)부터 진출을 시작한 이들은 당중앙위원회의
경우 <>제4차당대회때(1961년) 전체 정위원및 후보위원의 47.4% <>5차당대회
(1870년) 44.3% <>6차당대회(1980년)때 47.6%로 늘어났다.

이같은 기술관료들의 두드러진 약진은 체제형성기의 난관을 극복한 북한
정권이 관리기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충성심을 앞세우는 당성의 강조에서
전문기술적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동시에 북한도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한 동원의 완화와 함께 향후
개방과 실용노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 기술관료들이 주로 김일성의 빨치산그룹이 그들의 세력을
확고하게 안정시킨 제3차당대회이후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진출초창기에는
김일성정권유지에 충직한 도구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까지도 당원충원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당성인 것을 감안하면
기술관료들이 체제내부에 동화되지 않고는 등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가운데 7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질서를 주도한 이종옥부주석은 기술관료
의 대부격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영남.강성산.서윤석노동당 정치국위원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이 3세대의 추앙을 받고 있는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 포 진 <<<

지난 88년3월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제6기 13차전원회의에서 금속공업
부장 최만현, 문화예술부장 장철, 과학원원장 김경봉, 선박공업부장 이석,
보건부장 이종률등 기술관료출신 정무원 부장급 11명을 당중앙위 후보위원
에서 정회원으로 각각 승격시켰고 김달현 국가계획위원장, 윤승관은 후보
위원의 경력을 거치지 않고 직접 당중앙위원으로 임명했다.

또 6차 당대회에서 임명된 정치국위원 정회원 19명 가운데 기술관료출신은
6명이, 후보위원은 전체 15명가운데 8명이 포진했다.

이가운데 82년의 노동당 중앙위 제6기 제6차전원회의에서 최영림, 서윤석이
후보위원에서 정회원으로, 전병호 김두남이 당중앙위회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각각 승격됐다.

또 83년의 제8차전원회의에서는 허담이 정회원으로 승격됐으며 안승학
홍성룡 김복신등의 경제전문가들이 후보위원으로 전격등용되기도 했다.

86년의 제12차회의에서는 정회원에 이근모가 재등용되고 홍성남이 후보
위원에서 정회원으로 승진됐다.

이상의 변동에서 그특색을 보면 대체로 혁명원로들이 당사업일선에서
후퇴한채 명목상의 고위직을 지속적으로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정치국
정회원들로 새로 임명된 기술관료출신들은 그부침이 심한 것을 알수 있다.

이는 이들이 그동안 김일성.김정일을 양극점으로 한 북한권력체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경제와 외교 현안문제들과
관련, 그때그때 서열의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기술관료들의 약진이 상대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곳은 노동당
비서국이다.

먼저 6차당대회시 비서국의 인적구성을 보면 김정일.김중린을 당료로
분류할때 나머지는 모두 기술관료출신이다.

우선 당중앙위 제6기 7차전원회의때 채희정과 안승학이 비서로 발탁됐으며
비공개리에 허담 허정숙 서관희 김용순등이 발탁됐다.

그리고 10차전원회의에서는 금속공업계통의 경력을 가진 박남기를 발탁
했다.

또 85년에는 비서 10명가운데 6명을 경제전문가로 전격교체하기도 했다.

이당시의 비서발탁은 김정일 주도로 이뤄진 것이어서 향후 유력시되는
김정일체제의 성격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어 86년의 제11차회의에서는 비서인 연형묵이 제1부총리겸 화학.금속
공업위원장으로, 안승학은 경공업담당 부총리로 전보시켰으며 제12차회의
에서는 강성산 연형묵 전병호 최태복이 등용됐다.

이러한 인물기용은 중공업과 더불어 경공업발전에 상대적으로 비중을
두려는 당시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비서국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총비서인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혁명세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는 당의 기획및 집행부로서의 전문화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김정일의권력승계가 일단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시사해준다.
여타 공산국가에서 대부분의 권력승계가 제2비서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에비춰볼때 제2비서인 김정일이 실질적으로 비서국운영과 기획부문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행정집행부서인 정무원의 경우도 6차당대회이후 부총리급에
군부나혁명원로세대의 퇴장이 두드러진 반면에 기술관료의 증대현상이 더욱
심화되고있다.
실제로 86년의 8차내각 구성당시분포에 따르면 <>혁명세대 1명
<>당.기술관료 29명으로 거의 대부분이 타크노라트로 채워졌다.
또 모두 14명의 총리.부총리가운데 소련유학경력이 있는 5명이 모두
기술관료출신이었다.
향후 권력구도에서 기술관료들의 입지와 전망 김일성사망직전
기술관료들의위치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과 대중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중관관리자로 보는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의 침몰이후 이를 대체할만한 카리스마가 없다는 점에서
기술관료들의 입지는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식량난과 에너지부족,외화결핍등 북한이 내부적으로 처한 여건에
비춰볼때 경제관련 기술관료들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증대될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동당의 한성룡중공업부장,김경희경공업부장,신상균재정경리부장
서관희농업부장 전병호기계공업부장등의 행보가 주목되고있다.
다만 김일성사망후 들어서게될 북한 신권력형성의 초창기에는
전문성보다는 충성심이 더욱 강조될것이 예상되지만 이경우도
기술관료등용을 줄이거나 배제하지는 못할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장기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현실적필요성
경영관리체제의 합리화 기획업무의 분권화 전문화의 요구 생산성향상을
위한 각종유인책의마련등에 의한 행정합리화가 불가피함에 따라 기술관료의
역할증대는 명약관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북한의 부분적인 개방체제로 전환된다고 가정할 경우 무엇보다
전문화와분권화가 요구돼 김용순국제부장등 대외부문에 대한 전문관료들의
입지도 강화될것으로 보인다.
이가운데 김일성사망이후 새로운 권력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당의
핵심기구인 정치국위원과 비서국비서를 겸임하고있는 한성룡 계응태
전병호등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한다.
이와관련 양성철 경희대교수는 "당료와 관료를 충원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출신성분"과 "당성"을 고려하던 행태는 앞으로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방향으로 바뀔것"이라며 "이같은 경향은 현재 정무원조직에 노동당
하부조직에서의 신규충원이 현저히 감소되고있는 반면에 김일성대학졸업자
출신이 급격히 확산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김정일후계구도와의 관계 만약 김정일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권력을
장악할 경우 그권력의 강도는 김일성에 비해 상대적인 약화가 예상된다.
왜냐하면 수십년동안 김일성이 정권 정통성의 기반으로 내세운
항일빨치산운동의 경력이 없을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이 처한 경제난등
내부현안문제들로 단기간에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는 기존 권력내에서의 권력의 재배분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있다.
이경우 김정일체제는 합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대내외분석능력을 겸비한
기술관료들을 당과 행정부의 요직에 중용함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갈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아직도 만만찮은 세력을 보유하고있는 혁명1세대를 권력투쟁에서
배제할수 있는 명분의 축적과 함께 부분대외개방과 경제난해결이라는
난제를 해결해나가는 현실적인 고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정일은 그동안 노동당과 정무원의 인사에 폭넓게 관여하면서
이들기술관료의 "후견인"역할을 톡톡히 해온것으로 알려져 김정일이 집권할
경우기술관료를 앞세운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할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함께 일부전문가들사이에 김일성사망이후 북한의 정치체제는 더욱
다원화되고 개인의 역할이 중요될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우선 "신정권"의 지도자들이 혁명2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6.
25전쟁미경험세대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김정일정권"은
기존의 대남적대노선과 "사회주의혁명의 완성"이라는 명분에 더이상
집착하지 않아도되는 여유가 생길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기술관료들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