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여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매달리듯이 하여 조정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의 응낙을 받아낸 요시노부는 다음 수순으로 주전파의 제거에
착수했다.

첫째 목표는 육군봉행인 오구리다다마사였다. 그는 그동안 에도막부의
실권을 거머쥐고 시종 강경한 입장을 취하여 사쓰마 번저를 불태우고서
군사를 이끌고 오사카로 와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한 장본인이었다.

전쟁 발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그에게 있다고 요시노부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군사를 이끌고 오사카로 오지 않았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밀고
당기면서 자기의 주장을 어느정도 관철할 수 있었을 것으로 요시노부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구리는 에도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강경론을 고수하여 끝까지
싸워야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오사카성에서 부하 군사들을 속이고
야반도주를 하여 에도로 온 터이라,다른 중신들은 대개가 의기소침해서
다시 주전론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데,그만이 유독 기염을 토해대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작전까지 늘어놓으면서 싸우면 이긴다고 열을 올렸다.

"적군이 동진해 오면 하코네에서도 우스이도게에서도 방어전을 펴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요. 전부 관동으로 들어오도록 말이오. 그런 다음에 두
관문을 닫아버리면 독안에 든 쥐가 아니고 뭐겠소. 뭍에서는 그렇게 유도를
하여 포위작전을 펴면서 한편 해군을 총동원해서 스루가에 상륙하는 거요.

적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 말이오. 그리고 또 군함을 보내어
직접 가고시마와 바간도 포격하는 거요. 그렇게 사쓰마와 조슈의 본고장
까지 공격하면 적의 전의가 꺾일뿐 아니라,전세를 관망하고 있는 여러 번
들이 우리 막부쪽에 가담할게 뻔해요. 승리는 틀림없이 우리것이란 말이오"

이런 그의 말에 다시 귀가 솔깃해지는 중신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오구리는 요시노부를 비난하는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오사카에서도 진두지휘를 해서 반격을 하면 수적으로 우세하니 얼마든지
이길 가망이 있었는데,그걸 포기하고,에도로 와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대반격을 감행한다더니,어느새 그말을 잊어먹었는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오" 이런 말이 요시노부의 귀에 안 들어갈 턱이
없었다.

가차없이 요시노부는 그를 파직했다. 그리고 온건파이며 평화론자인
가쓰야스요시를 육해군 총재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