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건이야 지천에 깔려 있기 때문에 설사 신문기자 눈앞에서 일어난다
해도 그들은 코방귀도 뀌지 않는다. 거꾸로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흔치 않은 사건이라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테고
그래야 기자들도 바빠진다.
윤노파 사건도 그렇다.
처음 노파가 늦은밤 귀가길에 강도를 당해 병원에 옮겨졌을때만 해도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주목을 끌지 못했다. 신고한지 두어시간 지나서야
경찰관 하나가 느릿느릿 나타났다.
"두놈이었어. 둘다 20대후반쯤 됐지. 한놈이 날 칼로 찌르고 다른놈이
구두발로 옆구리를 찾어. 그래도 가방을 움켜 쥐고 놓지 않으니까 내팔을
비틀고 그것을 낚궈채 갔어. 나쁜놈들 내 기필코 이 빚을 갚고말꺼야"
노파는 꽤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귀찮다는듯 쩍쩍 입을 벌리면서
경찰관이 하품을 거푸해대자 노인은 잠시 깊은 생각에 젖었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가방속에는 3억5천만원이 들어있었는데"
"뭐요?지금 뭐라고 했소?"
"수표로 3억,현금으로 5천만원이 거기에 들어있었지 뭐요"
졸려서 반쯤 감기던 경찰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졌다. 그리고는 황급히
일어나더니 본서에다 연락을 취했다.
그로부터 30분도 채못돼 병원의 방문이 부숴질듯 열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신문기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다녔어요?"
기자들 질문이 시작됐다.
"50년동안 해온 순대국가게를 팔았다우. 내일 신문사에 그걸 들고가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기탁 하려고 했는데 그만 그 나쁜놈들이"
다음날 조간신문 사회면 톱은 단연 윤노파 사건이었다.
"70세 윤노파 평생번돈 장학금으로 기탁하려다 강도를 당했다"
신문기사가 떠들썩하자 세상이목은 모두 이 사건으로 쏠렸다. 처음
하품만 해대던 경찰도 이 사건 수사에 수백명을 투입시키는등 법석을
떨었다. 흥분에 휩쓸려 대부분의 기자가 윤노파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쓰는 동안 A신문의 최기자만은 윤노파의 주변을 확인취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취재는 조금도 헛되지 않았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윤노파는 순대국가게를 해본적이 없다. 일찍 남편이 죽고,친정 오빠에
얹혀 살아왔다. 꾀가 많고 돈쓰는데 아주 인색했으며,남한테 손해를 보면
꼭 보복하는 여자다. 3억5천만원은 커녕 돈백만원 조차 수중에 없는
여자다. 이런 사실들을 알아냈다.
"할머니 왜 그런 거짓말을?"
다음날 단둘이 마주하는 자리에서 최기자가 윤노파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며 시치미를 떼던 노파는 최기자가 증거물을
들이대자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만큼 돌려주려고."
노파는 단 한마디 대답을 하고는 더이상 입을 다물었다. 잠시뒤 석간
신문이 배달되자 최기자에게 사회면 제목들을 죽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중 어느 제목을 읽자 여자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최기자는 알아챘다. 그제서야 최기자는 모든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어떤 제목이었을까.
[[[ 답 ]]]
"상도동 달동네에서 두 청년 서로 칼로 찔러 살해하다"
동네사람들 이야기로는 서로 상대방이 돈 액수를 속였다면서 싸우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