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정규재특파원]러시아 경제개혁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던
보혁 대격돌의 위기는 일단 연기됐다.

옐친대통령의 의회해산을 겨냥한 10일의 폭탄선언이 있은지 3일만인 12일
소위 "수습책"이 마련됐다. 정국안정을 위한 결의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대통령과 의회의 긴급타협안은 이날 의회의 찬성을 받아 일단 정치적 법적
무게를 얻게됐다.

내용은 <>내년 4월11일 신헌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것
<>신헌법안은 의회상설기구인 최고회의에서 내년 3월말까지
마련할것
<>14일 복수 총리후보를 추천하고 국회가 총리인준에 실패할 경우
가이다르총리의 유임등이다.

이같은 수습안은 신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에 합의했다는
측면에서는 옐친의 승리로 해석된다. 그러나 신헌법안을 작성하는 쪽이
의회라는 점에 있어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소위 수습안이 마련된 12일의 정치협상에는 옐친대통령을 비롯
하스블라토프 의회의장,트라프킨 시민동맹의장,가이다르 총리서리,조르킨
헌법재판소장,스코코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등 15명이 참석했다.

어쨌든 수습안이 확정됨으로써 제7차 인민대표대회는 회기를 마칠 명분을
얻게됐고 정국은 국민투표및 새로운 의회의원 선거까지 빠른 정치적흐름을
타게됐다.

국민투표 실시일까지 보혁 양대그룹은 세확장과 대중확보에 있어 총력전을
전개할 것이고 이과정에서 돌발사태의 발생가능성은 배제할수 없다.

더구나 이같은 정치스케줄이 순조롭게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헌법논쟁은 처음부터 의회중심제냐,대통령중심제냐 하는 권력구조의
문제였다. 따라서 국민투표에 부칠 안을 만들 최고회의와 이에 동의하고
이를 투표행위로 가져갈 대통령이 3월말까지 3개월여동안 헌법안에 쉽게
합의할 가능성도 남았다.

쟁점은 대통령의 권한및 지나치게 확대되어 있는 의회의 권한을 여하히
개혁기에 걸맞는 수준으로 바꾸느냐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의회가
자발적으로 권한을 반납할 가능성은 낮다.

예를들어 대통령의 각료 임명권과 각종 행정관련기구및 사회기구의 통제
권이 대통령에 의해 장악될 것인지가 관심을 끈다.

중앙은행은 물론이고 국가통계위원회(통계청) 각종기구 연금등은 모두
의회 부속기관으로 되어있다. 대표적인 것은 러시아의 모든 국유자산조차
법적소유자가 의회여서 정부 민영화정책의 최대장애물이 되고있다.

경제개혁에 있어서 금융정책이 결정적인 것이지만 금리및 통화운영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총재는 의회에서 임명한다.

또 현재 옐친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지방행정관과는 별도로 의회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가진 행정관을 독자적으로 같은 지역에 파견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지난 9월 하스블라토프의장은 단독으로 8억루블의 정부예산을 특정
지역에 보내라고 결정할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말하자면 현행 헌법상 러시아 의회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구이다.

이러한 현실과 법의 괴리는 지난 78년에 만들어진 브레즈네프헌법의
골격이 민주화 또는 급진개혁기인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도입에 따라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을뿐 개혁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할수 있는 독소조항은 그대로 남아있다.

새로운 헌법안이 개혁에 걸맞게 바뀔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90년 구성된
의회에서 차지하는 개혁파의 비중은 낮다. 개혁파는 스스로를 약 30%라고
주장하지만 보수파쪽은 친옐친성향의 의원이 20%에 못미친다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수습책으로 내년3월까지 극적충돌은 유보됐지만 사활이 걸린
레이스가 막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레이스가 궤도를 벗어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라체프 국방장관은 11일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추상적인 말로 중립을 선언했지만 군부가 과연 어느편을 드느냐에 따라
사태전개는 가변적이다.

옐친은 최고회의가 진행할 개정안과는 별도로 국민청원에 의한
국민투표전략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12일의 수습안이 마련된데는
"우선 새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옐친의 판단이 깔려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민심은 개혁과정 1년동안 극도로 악화되어 있고 내년4월쯤에는
더욱 나빠져있을 가능성도 많다. 옐친의 성공여부는 개혁의 진통과 일시적
혼란을 러시아 민중들이 어느정도까지 인내할 것이냐에 달려있다.

아무튼 향후 수개월간의 유동적인 정치과정은 가뜩이나 표류하고 있는
경제를 침몰상황으로까지 몰고갈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