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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주한 외국인 I♥KOREA]   "한국영화 평론 10년… 이제 자막없어도 문제없죠"

입력
2007-08-24 18:09:20
수정
2007-08-25 14:24:11
지면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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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버라이어티 통신원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

1998년 여름 서울의 한 극장. 영화가 끝났는데 미국인 청년은 한동안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나온 잔잔한 러브 스토리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매사추세츠 고향을 떠나 서울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지 여섯 달째. 타인에 불과했던 한국,그리고 한국 영화와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국 영화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청년 달시 파켓의 인생 역시 크게 바뀌었다. 미국 유명 엔터테인먼트 잡지 '버라이어티'의 한국 통신원,영화 주간지 씨네21의 고정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이 그를 따라 다닌다. 그의 이름은 한국 영화의 메신저로 해외에 더 잘 알려져 있고,국내에서는 영화 평론가로 꽤 유명해졌다.

"그동안 저와 한국 영화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놀라워요. 한국 영화를 자막없이 술술 보고 있는 내 모습은 요즘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난 22일 오후 용산 CGV극장에서 만난 달시 파켓의 웃는 얼굴에서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느리지만 정확한 한국어 발음도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방금 시사회에서 본 코미디영화에 대해,좋아하는 배우인 전도연과 배두나에 대해 수다를 풀어놓는 그의 모습은 순수한 영화 애호가에 가까웠다.

하긴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1년에 200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한 고역일 게 틀림없다.

그는 영화평론가로서 한국 영화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본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열성적인 한국 영화팬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한국 영화계 소식을 매주 버라이어티에 보내려면 신문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최근에는 여러 영화제의 자문 역할도 맡았다. "이래저래 너무 바빠졌다"고 말하는 그는 분명히 성공한 외국인이다.

10년 전만 해도 영화계에서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커질 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달시 파켓은 1999년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한국 영화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영화 '쉬리'가 최대 관객을 기록했다는 내용으로 첫 뉴스레터를 썼는데 독자는 딱 7명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었어요. 저 역시 좋은 영화를 공유하고 싶어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 무렵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 르네상스'는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등 젊은 영화감독들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각국의 영화팬들은 한국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의 홈페이지(Koreanfilm.org)는 한국 영화 정보에 갈증을 느낀 세계인들에게 하나뿐인 통로로 떠올랐다. 요즘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하루 평균 5000명에 달한다. 뉴스레터 독자도 7명에서 4000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을 방문한 회원을 만나 맥주 한잔 하면서 한국 영화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달시 파켓은 2001년 영국의 스크린인터내셔널에 글을 쓰면서 '한국 영화 메신저'로 본격 등장했다.

2년 전에는 아시아 영화 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한 버라이어티지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버라이어티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로 보는 매체다. 그의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한국 영화의 구매와 배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한국 생활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고향 생각이 나거나 늘어난 업무 스트레스로 고민할 때 역시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한국인 아내는 영화 속의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려는 그에게 좋은 조언자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친구로 만났어요. 한국어를 배운다는 핑계로 매일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했죠." 세 살 된 아들 재민이의 교육 문제와 10월에 태어날 둘째의 이름을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평범한 한국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한국 영화가 숨가쁘게 발전해온 것은 한국 사람 특유의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큰 꿈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한국인들의 강점을 아이들도 닮길 바랍니다."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다 보니 특이한 시도는 잘 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개발해 나갔으면 합니다."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드라마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 밝혔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은 허진호 감독의 신작은 최근 그가 가장 기대하는 작품 중 하나다.

최근 달시 파켓은 임무 하나를 더 맡았다. 영국의 한 출판사로부터 한국 영화에 대한 책을 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지켜본 한국 영화의 성장사를 제대로 정리해볼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운영해온 한국 영화 웹사이트를 더 깊이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꿈도 있다. "사무실을 열고 같이 운영할 사람도 구하고 싶은데 바쁘다 보니 아직은 꿈에 머물러 있죠. 펀딩부터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한국인보다 더 '한국 영화'에 애정을 가진 달시 파켓을 보면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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